| |
 |
|
| |
| |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
|
| |
인터넷은 ‘악마’인가.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죽음의 원인으로 인터넷이 지목된다. 스마트 폰이 널리 보급된 이후에는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살인 무기’로 떠올랐다. 최근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죽음을 두고 일부 언론은 앞 다퉈 ‘SNS 폭력’이 송 아나운서의 죽음을 몰고 왔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들 보도를 내보낸 매체는 물론 신문과 TV 등 올드 미디어이다. 그만큼 새롭게 등장한 SNS의 위력이 위협적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인터넷만 ‘폭력’을 휘두르는 매체인가. 신문과 방송 등 기존 매체는 전혀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신문과 방송도 개인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보도로 명예를 훼손하여 ‘인격 살인’을 자행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과 SNS를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진실인양 포장하고 유포한 일부 황색언론은 ‘살인방조’ 혐의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미확인 정보를 토대로 욕설을 퍼부은 TV 오락프로그램이 더욱 직접적인 ‘살인 무기’는 아니었던가. 그것도 국가기간방송 KBS의 자회사인 KBSjoy가 그랬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때아닌 살인무기 논란이를 둘러싸고 온라인에서는 때 아닌 ‘살인무기 논란’이 벌어졌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마녀사냥에 가깝도록 그녀의 사생활을 기사로 까발렸던 황색 언론들이 이번에는 SNS를 향해 또 다른 마녀사냥에 나섰다”며 “정작 위험한 것은 SNS가 아니라 선정적인 뉴스 장사에 SNS를 이용하는 황색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민교수는 “악성 게시글을 버젓이 신문 지면에 끌어 올리고, 오보와 유언비어를 검증하고 교정하려는 SNS의 집단의지보다 더 발 빠르게 이를 사실인 양 기사화하고,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글을 굳이 공론장으로 끄집어내 일을 크게 벌이는 황색 언론이야말로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위터 사용자 @Brachetto는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조합,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 등은 짧은 시간에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그 동안에 누군가에게 타격을 입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며 “소셜 미디어라는 방패에 숨어 이들에게 압박을 가한 사람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오늘을 잘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적이 있는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는 그 순간 SNS는 위험하다”며 “어느 순간까지는 그 조작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 방송의 역기능 더 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 1백여년동안 언론보도를 독점해온 신문과 방송 등 올드 미디어가 저질러온 온갖 해악을 떠올리면, 인터넷의 ‘죄악상’은 별게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동안 신문과 방송 등 주류 매체들이 여론을 조작하여 일으킨 수많은 사건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기도 했다. 부패한 독재 권력과 야합한 소수 엘리트 저널리스트들이 일방적으로 수용자들에게 정보를 주입시켜 여론을 조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독재 권력의 통치수단으로 악용됐고 국민은 인터넷이 저지른 죄악 보다 훨씬 흉포한 범죄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쌍방향 통신과 실시간 정보유통이 가능한 인터넷이란 ‘괴물’이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소수의 언론사와 저널리스트들이 권력을 행사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파워는 막강했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렸다. 독재자들은 언론인들을 회유하거나 힘으로 억눌러 신문과 방송을 ‘정권 홍보수단’으로 삼았다. 이들은 수많은 거짓보도로 대중을 속였다. 이들은 진실을 거짓으로, 살인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광주에서 수많은 민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은 ‘구국의 영웅’으로 둔갑했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죽어간 광주시민엔 ‘폭도’란 딱지가 붙었다.
이러한 거짓보도에 대항했던 매체는 당시에는 운동권의 유인물과 국민 사이에서 떠도는 유언비어가 전부였다. 따라서 운동권은 ‘비국민’으로 매도되었고 유언비어는 단속대상이었다. 독재권력에 대항한 언론인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언론사에서 쫓겨났다. 국민의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반면 독재 권력에 ‘부역’한 언론사와 언론인들은 온갖 특혜를 누렸다. 언론사들은 구멍가게에서 언론재벌로 급성장했고, 기자들은 정관계로 진출해 호사를 누렸다. 불과 31년 전의 일이다. 올드 미디어의 한계이자 부작용이다.
| |
 |
|
| |
| |
▲ 지난달 23일 투신자살한 송지선 아나운서에 대한 막말로 지탄을 받은 KBS조이 '엔터테이너스'.(뉴시스) |
|
| |
그렇다고 해서 올드 미디어가 역사 발전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존 뉴스매체가 표현의 자유 등 인권 신장에 기여하여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비록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에는 강한’ 속성을 지녔지만, 민주주의 발전에 끼친 공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6.10시민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사건을 국민적 저항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힘을 올드 미디어는 가지고 있었다. 정신이 올곧은 대다수 언론인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뉴미디어, 신문과 방송 부작용 보완재 ‘각광’ 훨씬 뒤늦게 등장한 인터넷과 SNS 등 뉴 미디어는 신문과 방송의 단점과 부작용을 극복해낼 수 있는 매체로 각광받고 있다. 온라인은 뉴스의 생산, 유통 등 저널리즘의 거의 모든 단계를 혁명적일 정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은 뉴스의 생산과 유통에서 더 이상 독과점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인터넷 뉴스업체와 시민 저널리즘, SNS 등 광범위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복잡한 뉴스생산과 유통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도 뉴스 생산과 편집 및 확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들은 시민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거나 블로그를 갖고 있거나 이메일을 통해 특정 뉴스에 대한 논평을 쓰기도 한다. 정치적 의견은 물론, 뉴스의 공급원도 훨씬 다양해져 전통적인 형태의 저널리즘이 과거 보다 위축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급속한 보급과 트위터 등 SNS의 등장으로 뉴스의 제작과 유통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거나 생각을 전달하고 실시간으로 이슈를 확인한다.
오늘날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에서 정치부패나 스캔들을 꽁꽁 숨기는 것은 매우 힘들다. 뉴스의 선택과 여과가 소수의 언론사와 언론인에 의해 이루어졌던 과거와 달리 사용자들은 훨씬 다양한 정보원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누구나 뉴스와 정보, 의견을 제약 없이 제작하여 손쉽게 유통시킬 수 있어 국민여론도 소수 엘리트 저널리스트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권력이 여론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신문의 역할 TV-인터넷에 빨리잠식돼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에서 TV와 신문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다. 그러나 신문은 TV보다 인터넷에 빨리 잠식되고 있다. 일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은 이미 다른 양식의 뉴스를 압도했다. 한국에서 오프라인 신문 독자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51.5%인 반면, 온라인 독자의 비중은 77.3%였다.(OECD 보고서 ‘인터넷 혁명과 뉴스의 진화’) 게다가 이 보고서는 “온라인 뉴스생태계의 등장으로 인해 실제 독점적 뉴스 미디어가 뉴스를 통제하던 시대는 종결되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신문과 방송 등 기존 매체에 종사하는 소수의 엘리트 저널리스트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매체 영향력이 떨어지는 데다 저널리스트라는 독점적 지위마저 위태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향유해왔던 권력도 상당부분 잃어버리게 됐다. 물론 인터넷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고 기존 언론사만을 우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 때문에 가까스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나 할까.
앞서 간단하게 짚고 넘어간 것처럼 올드 미디어이건, 뉴 미디어건 간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매체의 부작용은 간과한 채 타 미디어의 부작용만을 과장하여 비판한다면, 도도한 시대의 흐름에서 영원히 밀려나 버릴지도 모른다. 경쟁 미디어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최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클라우드 저널리즘’고려해야신문과 방송 등 올드 미디어들은 뉴스 수집 및 생산, 유통과정에 인터넷의 가장 커다란 장점인 ‘집단 지성’을 참여시켜 뉴스의 질을 높이고 전혀 다른 차원의 뉴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많은 누리꾼이 특정 이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른바 ‘클라우드 저널리즘’이 그것이다. 기자들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면,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은 이를 가능케 해주는 수단이다.
이제 기자는 출입처에서 취재원의 발표를 요약해서 정리하는 작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기자는 관심사가 비슷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직하거나 여기에 함께 참여하는 ‘기획자’(curator)가 되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협업 기자의 핵심과제2009년 영국 가디언은 50만 개가 넘는 국회의원 월급 사용처 자료를 1차로 검토할 커뮤니티를 구성해 검토내용을 기사화했다. 독일의 한 커뮤니티는 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국방부 장관의 박사 논문을 한 문장 한 문장 뜯어보며 논문표절 여부를 검토했다.
이 과정에 기자들이 참여하여 협업을 통한 조사와 새로운 뉴스 유통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독일 국방부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협업 및 네트워크를 통한 기사 선별이 기자의 핵심과제가 되었다.
물론 인터넷으로 인해 불필요한 정보, 거짓 뉴스와 유언비어가 양산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사용자들은 거짓 유언비어와 옳은 정보를 분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더러 이를 위해 필요한 여과 및 신뢰 기제들을 스스로 만드는 존재로 인식한다.
이른바 ‘집단 지성’의 힘이 그것이다. 이제 기존 매체의 기자들이 경쟁매체(?)가 될 수도 있는 인터넷과 SNS의 부작용만을 확대 과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 송지숙 아나운서의 죽음을 놓고 벌어진 ‘살인무기’ 논쟁을 보고 느낀 소회이다.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