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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연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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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말했다.
“음악이 진정 발전하려면 장르를 뛰어넘어야 한다. 장르에 갇혀 있으면 그 음악이 그 음악일 뿐이다.
음악을 사랑한다면 장르를 뛰어 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최근 ‘무릎팍도사’에 출연, 자신의 굴곡진 삶을 진솔하게 들려준 ‘국민할매’의 얘기 속엔 진정성으로 인한 울림이 있었다. 그의 얘기는 장르를 뛰어 넘는 시도와 그 시도를 수용하는 분위기에서 음악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또, 새로운 미래도 열수 있다는 취지였다.
한 장르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그 장르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장르는 그의 존재가치를 상징하는 코드이자 삶을 지탱해주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처음 발을 내 딛거나 개척자에겐 콜럼버스처럼 신천지 영역일 수 있지만, 그러나 일단 성취감에 빠져 안주하거나 집단 이기주의 도구가 되면 그 신선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족쇄가 된다. 우물 안 개구리를 만드는 게 장르다. 빛이자 덫인 ‘장르의 법칙’인 셈이다. 그러나 이 장르의 문제가 비단 음악계에만 해당되겠는가?
최근 MBC 이상호 기자가 의미 있는 글 한편을 자신의 사이트에 올렸다. ‘삼성 X파일’ 보도와 관련 지난달 대법원이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때, 무죄 의견을 냈던 법관 중 한 사람인 이홍훈 대법관에 관한 내용이었다. 5월 은퇴를 앞둔 이 대법관이 얼마 전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특강을 하던 날 현장에서 그를 만나 질의 응답한 내용을 짧은 소회와 곁들여 올린 글이다.
마침 이홍훈 대법관은 이날 특강에서 한국사회의 도덕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주된 판례로 ‘삼성 X파일’ 사건을 거론 했었다. 이상호 기자의 글 내용 일부를 조금 길지만 여기 그대로 싣는다. 이 땅의 언론자유와 관련 매우 중요한 한 영역(장르)인 법조계의 분위기를 살필 수 있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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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3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현 대통령실 정무1비서관)의 상고심을 선고하기 위해 자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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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는 민주주의 발전과 직결"
“대법원은 삼성 X파일 보도에 정당성이 부족하다면서, 그 이유인즉 ‘뇌물이 실제 전달되지 않고 단지 모의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테이프를 들어보면 이학수-홍석현 두 사람은 돈을 줬음을 되풀이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중대한 사실관계를 오인한 것은 아닌지요? 설사 그렇더라도 유죄 판단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유는 아니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이상호 기자 질문)
“이번 재판의 쟁점은 사실 관계보다는 개인의 통신비밀보호의 범위와 한계, 또 보도 시 충돌의 문제 한계가 쟁점이었습니다. 그 결과 공익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논란이 제기된 것도 사실입니다. 대법관들이 깊이 있게 고려하고 토론했고, 의사결정 과정에 국민 정서도 감안했습니다. 다만 판결을 둘러싼 가치도 국민 정서와 함께 변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워낙 예민한 사안이다 보니, 노대법관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리고는 잠시 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제 개인적으로 소수의견에 가담한 이유는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언론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취재 자체에 불법성이 없다면 보도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저해적인 요소가 되겠다. 미국(대법원)이 그런(언론자유) 쪽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도 미국의 가치인 민주주의와 법치의 발전을 중시한 때문이라고 할 것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추구와 이념이 약한 때문이 아니냐고 봅니다. 아무래도 사회질서나 분단된 상황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홍훈 대법관이 직시하고 있듯 언론자유는 민주주의 발전과 직결돼 있다. 언론자유는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 기본 권리로서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효용론적 입장에서도 지지되는 자유이다. 소극적인 자유가 아니라 적극적인 민주정치의 구성 원리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법부에서 일부라고 할지라도 “우리사회는 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추구와 이념이 약하다”는 정서를 에둘러 내세워 제한하려고 하는 판단이 있다면 이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엔 엄연히 ‘4·19 민주이념 계승’과 ‘조국의 민주개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한다는 언명과 함께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국가 질서의 기본 원리에 민주주의 가치추구와 발전이 담겨 있으며 사법부는 이러한 가치추구 바탕위에서 법치를 세워나가야 할 책무가 있음을 말해준다.
모두가 알고 있듯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꽃을 피워낸 것은 아니다. 우리 현대사가 말해주듯 지난한 싸움을 통해서 얻어낸 산물이다. 계속 가꿔나가야 할 민주주의를, 이 민주주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언론자유를 제한하려고 하는 판단과 행위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벌 보호를 위해, 특정 보수파를 위해, 보수주의 소신에 의해 스스로 장르에 갇힌다면 매우 위험하고 불행한 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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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측을 상대로 낸 징계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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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판결은 정권 눈치보기"
또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 언론노조가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를 지낸 낙하산 사장 임명 저지를 위해 투쟁했던 “YTN 해직기자 3명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도 강력 성토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혹의 눈길이 가는 것은 한달 전 ‘해고기자 전원 복직과 화해 권고’까지 적극 추진했던 재판부가 사측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사측이 원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판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사법부에 거는 기대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권이 소위 4대 권력기관인 안기부, 검찰, 경찰, 국세청을 장악했을 때 ‘진실이 무엇인지 법률로서 판단’하는 법관의 정의로움이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온정주의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스스로 장르에 갇힌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언론자유 또한 위협받을 수 있다. 사법부의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거나 장르에 빠져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판결, 상식을 벗어난 튀는 판결, 민주주의 발전을 거스르는 판결들을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탁월한 사람이라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얘기는 결코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손정연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전 한국언론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