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스카이라이프의 재송신 분쟁이 한창이다. 한 방송전문가는 이 분쟁을 ‘수류탄 게임’에 비유했다. 사업자들은 서로 수류탄 안전핀을 뽑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아무도 섣불리 뽑을 수 없다. 먼저 뽑는 쪽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케이블방송사업자와 지상파 간의 재송신 갈등 역시 풀리지 않고 있다. 양측의 분쟁이 격화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하다. 뉴미디어 시대의 풍경처럼 돼버린 양측의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이를 콘텐츠 가치와 플랫폼 가치가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지상파의 막강한 콘텐츠 경쟁력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시청자가 전파를 수신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수신 환경이 좋지 못한 곳은 지상파를 볼 수 없다. 콘텐츠는 여전히 강한데 플랫폼이 못 따라가는 셈이다.
그 자리를 위성방송이나 케이블 같은 대안 플랫폼이 대신하게 됐다. 지상파는 타 플랫폼 없이는 커버리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타 플랫폼은 지상파 콘텐츠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상황에서 분쟁을 해결하려면 콘텐츠 가치와 플랫폼 가치를 냉정히 판단해 객관적인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해법으로 제시된다. 법원 판결을 통한 판단은 분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현대원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궁극적으로 방송 생태계의 양 주체가 서로 가치를 인정하고 상생하는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라며 “이를 사적 계약관계라고 밀실에서 해결하지 말고 국민이 지켜보는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 당사자와 학계 등이 참여하는 공개적인 공식기구에서 콘텐츠와 플랫폼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콘텐츠의 지상파 독과점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콘텐츠 진흥정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문제는 지상파 무료방송과 케이블·위성 유료방송의 시장 영역이 정확히 나뉘어져 있지 않은 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지상파는 시청자가 전파로 수신할 수 있는 권역을 1백% 수준에 가깝도록 더욱 개선해 자체 콘텐츠 전달이 가능하도록 하고, 유료방송은 프리미엄급 콘텐츠로 무장해 더 높은 시청료를 받아 자생할 수 있는 방송환경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상파는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방송 환경이 되면 난시청 문제를 대폭 해결할 수 있으니 유료방송이 지상파 콘텐츠에 의존해 운영되는 구조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상파가 사익을 위해 ‘시청권을 볼모로 한다’는 주장이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나온다. 엄밀히 말해 지상파가 책임져야 하는 시청권은 난시청 지역에서 다른 플랫폼을 불가피하게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시청자에 국한된다는 주장이다. 다만 지상파가 그동안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커버리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다른 플랫폼에 의존했던 것이 사실이며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은 “정부도 당장의 분쟁을 중재하는 것보다 좀더 거시적인 방향을 취해야 분쟁을 막을 수 있다”며 “지상파의 커버리지를 확대하고 타 플랫폼이 지상파로부터 독립 가능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장기적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