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가 작은 손을 흔든다. 공항 탑승구를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더 묵직하다. 미지의 세상에 간다는 긴장과 기대가 교차했던 지난 몇 달간, 이 공항이 가족들과 잠시나마 이별 인사를 나누는 곳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대지진이 지구촌을 강타한 2011년 3월, 도쿄로 떠나는 특파원들이 겪어야 하는 한 장면이다.
쉽지 않은 특파원 선발 과정. 축하 악수를 청하던 동료들의 체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가장들의 어깨는 무겁다.
한 언론사 신임 도쿄특파원은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에 두고 홀로 일본에 들어왔다. 서울의 집도 팔았다. 아이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그 뒤 전해온 일본 동북부 지진의 대참사 소식. 예삿일 같지 않아 가족들은 한국에 남아 지켜보기로 했다. 가족들은 오늘도 조그만 낯선 원룸에서 아빠의 안부 전화를 기다린다.
또 다른 언론사 도쿄특파원은 지진의 공포를 소름끼치게 느꼈다. 더 가슴 아픈 건 가족들이 받은 충격이었다. 내진 설계된 아파트는 고층일수록 진동이 더 엄청났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가족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에도 아빠는 집에 달려가지 못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때문이다. 교통도 마비된 상태였다. 결국 가족은 한국으로 떠났다. 충격이 컸던 가족들이 심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가장이기에 앞서 기자이기 때문이다. 지진의 위험을 고국에 타전해야 하는 기자는 가족을 옆에서 지켜줄 수 없었다.
가족을 보내고 홀로 남은 특파원들에겐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기사 쓰고 보고하느라 참고 있지만 마음속에 받은 상처는 불혹을 넘긴 남자들도 숨길 수 없다. 또 다른 언론사의 특파원은 “지진 때 느낀 공포 때문인지 자꾸 폭식을 하게 되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며 “상황이 안정되면 속상처가 드러날 것 같다. 가족이 곧 돌아오는데 그립다”고 말했다.
최악의 위기는 벗어난 것으로 판단한 특파원 가족 일부는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 자녀들의 개학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국에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아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가족들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지만 불안은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 염려하는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장담 못하죠. 여기서 더 악화되면 ‘엑소더스’ 상황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