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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북한 취재의 '소박한 감'에서 출발

제42회 한국기자상 대상 취재후기/연합뉴스 장용훈·최선영 기자

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2011.03.02 00: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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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용훈 기자  
 

   
 
  ▲ 최선영 기자  
 
 신뢰할 만한 취재원 총동원…北 내부 변화 추적


“장용훈씨, 최선영 부장이랑 한국기자상 됐어. 축하해.”
한국기자협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홍성완 선배에게 수상 사실과 축하말을 전달받은 순간 마냥 얼떨떨하기만 했다. 올해에는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대상이 9년 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많이 놀랐다. “우리가?”라는 자문을 거듭하면서.

언젠가 정말 배울 것이 많았던 한 타사 북한 전문기자 선배와 기자실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간다.
“용훈아, 넌 잘 때 어떤 꿈 꾸냐.”
“글쎄요. 뭐 일상적인 일들이죠.”
“나는 김정일 만나서 인터뷰 하는 꿈을 자주 꾼다. 직업병인가봐.”

아마도 그 선배는 잠재의식 속에서도 늘 북한을 취재하고 있었던 듯싶다. 난 당시 그냥 하루살이처럼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대화를 나누며 부끄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나의 꿈속에도 김정일, 평양, 금강산 등이 등장한다. 늘 북한 문제를 함께 고민해오고 김정은 기사도 함께 썼던 최선영 선배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늘 그곳의 꿈을 꾼다고 한다.
내가 북한 문제를 기사로 쓰기 시작한 것은 김일성이 사망하던 1994년부터로 어느덧 햇수로 17년이 되어가고 있고, 최 선배는 1996년 국내에 온 이후부터 북한 기사를 썼으니 15년으로 둘이 합쳐 기자로서 북한 문제를 다뤄온 지 30년을 넘어섰다.

사실 이번에 한국기자상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김정은 후계자 내정 기사는 오랜 기간 북한문제를 취재해 온 소박한 ‘감’에서부터 출발했다.

2009년 8월 하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문제로 쓰러졌다는 미확인 소문이 돌았고 이어 9월9일 북한정권 수립 60주년 열병식에 그가 불참함으로써 건강 이상설이 굳어졌다. 상당수 국내 전문가들과 정부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북한 체제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김 위원장의 부재는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최 선배와 나는 북한 지도부가 ‘포스트 김정일 체제’ 준비를 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이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북한의 체제, 포스트 김정일 등 거창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결국 “김정일이 쓰러졌다면 다음은 누굴까?”라는 작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취재였다.

우선 많은 국내외 전문가와 정부 당국자, 정보 관계자 등을 접촉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정보를 교환해 오던 취재원들과 의견교환도 빈번하게 했다. 사실상 이 대목에서는 오랜 기간 북한을 다뤄오며 쌓아온 전문성이 적잖은 도움을 준 것 같다.

김 위원장이 와병으로 쓰러지고 얼마 뒤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사실상 2인자로 부상했고 국정 전반을 관리하고 있는 사실이 포착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의 남편이자 ‘절친’인 장성택 부장에 대한 의존은 너무나 당연했다.

장 부장에 대해 기사화한 뒤, 북한의 후계체제 준비 가능성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장성택 부장에 의한 대리통치는 ‘비상’임을 확인하는 것이고, 임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최 선배와 나는 김 위원장의 장남인 정남에 주목했다. 장자 승계라는 유교적 전통을 가진 북한사회의 문화, 장성택 부장과 김정남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했던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올해 1월 초 북한에서 후계자 내정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정보를 취재원을 통해 입수했지만 후계자 ‘0순위’로 봤던 장남 김정남이 아니라 셋째 아들인 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통보됐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은 극도의 폐쇄성으로 인해 특히 권력층 내부에 대한 취재가 대단히 어렵고, 힘들게 정보를 입수해도 신뢰도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북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취재원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긴밀히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신뢰성을 확인하는 게 어느 분야에서보다 긴요하다. 기사에서 ‘소스’로서 등장하는 ‘소식통’들은 대부분 수년간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북 정보와 분석을 교환하고 이에 대한 확인을 통해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을 내린 인물들이다.

2003년 장성택 부장의 가택연금 기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인 김옥에 관한 기사, 북한군 고위층의 인사이동에 관한 기사 등 과거 북한관련 단독 기사들도 동일한 소식통들을 통해 기사화할 수 있었다.

가능한 한 취재원 신원을 밝히는 게 언론보도의 원칙이고 필자 본인 역시 이 원칙에 동의하지만 북한 관련 취재원의 경우 신변안전 문제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더욱 취재원을 보호해줘야 할 필요성이 커서 ‘소식통’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최 선배와 나의 취재원 중에는 일본, 중국, 미국 등 북한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들의 사람들도 있다. 북한 권력층 관련 첩보나 정보의 신빙성 문제와 20대 중반에 불과한 삼남 정운이라는 의외성 때문에 즉각 기사화하는 것을 미루고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에 있는 신뢰할 만한 취재원을 총동원해 북한 권력 내부의 변화를 추적했다.

폐쇄적인 북한사회의 특성상 취재한 팩트에 대한 복수의 확인이 없이는 기사화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해외의 취재원까지 동원해 다방면의 취재를 한 결과 ‘김정은 후계자 내정’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돼 1월15일 `北김정일, 3남 김정은 후계자 지명’, ‘北김정일 후계자 김정은은 누구인가’, ‘北김정일, 왜 3대세습, 3남 택했나’ 등의 기사를 송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보보다 중요한 것이 추가적인 기사라는 것이 최 선배와 나의 판단이고 후계자를 내정한 이후 북한 체제를 다각도로 추적했다. 장성택의 전면 부상과 김정은이 ‘김 대장’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각종 인사와 ‘100일 전투’ 등 각종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후계자 내정과 관련성을 추적했고 지속적으로 기사를 제공했다.

사실 김정은 후계 기사가 송고됐을 때 국내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1개월 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이 우리의 기사를 확인해 따라와 줬고 국가정보원이 6월1일 북한 당국이 해외공관에 보낸 전문을 입수해 이러한 ‘물적 자료’를 근거로 ‘김정운 내정’을 공식 확인하면서 우리의 ‘김정은 후계자 내정’ 기사는 생명력을 가지고 대부분의 언론에 실릴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최 선배와 나는 북한과 관련해 많은 기사들을 썼다. 우리는 그 기사들을 ‘우리 자식들’이라고 부른다. 김정일 위원장의 네 번째 부인 김옥 기사는 2년 가까이 추적에 추적을 거듭하는 공을 들인 끝에 기사화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통보, 장성택 가택 연금 등 많은 ‘자식들’을 만들었다.

열 손가락 중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쓴 모든 기사들도 모두 소중하다. 하지만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김정은 후계자 내정 기사는 열 손가락 중 제일 ‘이쁜’ 것이 사실이다.
동료들이 주는 최고의 상인 한국기자상 대상을 받았지만 오늘 당장 취재현장에 서야 하는 최 선배와 나에게는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한다. 최 선배와 나는 대화를 나눈다.

“김정일 위원장이 많이 아프다는데 이제 남은 건 사망기사잖아. 이거 물 먹으면 그동안 쌓은 거 말짱 꽝인데.”
“설마 북한이 먼저 발표하겠지….”
“그래도 물먹지 않게 준비해야지.”

상을 탄 기쁨은 잠시 뿐이다. 최 선배와 나는 분단된 조국에서 민족문제를 전하는 기자로 다시금 피 말리는 취재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분간 최 선배와 나의 입에는 “혹시 김 위원장 죽은 거 아닌가요”라는 말을 달고 다닐 것 같다. <장용훈 연합뉴스 북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