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학원 강사 미련 없이 그만두고
35살에 입사…나이 잊은 열정적 취재 눈길서른네 살까지 그는 강남에서 잘나가는 논술학원 강사였다.
입사가 빨랐다면 7~8년차는 족히 됨직한 나이인 서른다섯에 기자가 됐다. ‘늦깎이 기자’ 오중호는 KBS전주에서 일하고 있다.
“언론사 첫 시험을 31살에 봤어요. 삼수하고 군대 다녀오고 이래저래 대학을 오래 다녔기 때문이죠. 최종 면접에 여러 차례 오르기도 했지만 떨어지고 말았죠. 32살이 되자 시험 볼 기회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동생이 KBS가 나이 제한을 폐지했다며 시험을 권유했어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치렀는데 덜컥 붙었어요. 운이 많이 따랐죠.”
마지막 관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그는 대학선배의 권유로 강남 압구정에서 논술을 가르쳤다. 언론사 준비를 하며 생계도 이을 겸해서 시작한 강의는 입소문을 탔고, 그러다 보니 대치동 학원가에서 러브콜이 왔다. 3년간 일했는데 마지막 급여가 현재 KBS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금전적으로 아쉽기도 했지만 정론직필을 하겠다던 어릴 적 꿈을 생각하며 미련 없이 기자의 길을 선택했죠.”
2006년 1월 수습을 시작할 때 35살, 나이 들어 시작한 기자생활의 고충은 컸다. 밤샘 취재를 밥 먹듯 하는 수습시절엔 체력이 달려 힘들었고, 밖에서 알던 후배가 회사에서 선배가 되다 보니 난처한 경우가 적잖았다. 특히 선배들이 나이 많은 후배를 불편하게 여겨 기사 작성이나 취재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나이를 떠나 선배를 존중하려는 태도를 가지려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좋아지더군요. 한 달이라도 일찍 들어온 사람은 반드시 그만큼 선배로서 배울 만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올해로 6년차인 그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고, 60분짜리 보도특집(동북아 인삼 대전쟁)을 제작해 방송할 정도로 사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등단만 안했지 시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쓴 시가 수천 편이 넘고, 100차례 넘게 상을 탔으며, 신춘문예 본심에 18번이나 올랐다.
“입사한 뒤 처음 쓴 시 제목이 ‘멧돼지가 한 말’이었습니다.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를 취재하면서 왜 산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가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은 멧돼지를 두려워하지만 멧돼지가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지난 5년간 사회부에 있다 보니 취재해야 할 사건사고가 많아 시적인 사유의 시간이 통 부족하더군요.” 기자생활에 쫓겨 시를 많이 쓰지 못한 그는 시집을 낼 계획을 몇 년 뒤로 미뤄둔 상태다.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기자를 꿈꾼다. 어머니들이 보편적인 시청자 층이라고 생각해서다. 어머니들이 관심을 갖는 섬세하고 소박한 아이템이 특종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어머니들이 알기 쉽고 어머니들에게 필요한 뉴스를 하다 보면, 저절로 좋은 방송기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이 시대 어머니들에게 인정받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