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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칼럼에 대한 반론

"오보를 용서합니다"

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2010.12.31 1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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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너 누구세요. 구제역이 발생하면 500m 안에는 기자가 당연히 출입하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사진을 취재해야하는 마음 이해는 하지만 당신의 행동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제 앞에 계시면 소랑 같이 묻고 싶네요. 제발 정신좀 차리세요."

저는 성탄절 아침부터 현재까지 온갖 종류의 리플과 함께 메일, 전화 등을 수없이 받고 있습니다. 구제역 통제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요지의 보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간추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수의 중앙 일간지가 23일자에 게재한 구제역 관련사진이 눈길을 끌었다.구제역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가축과 농민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보여준 사진이다. 하지만 이런 사진을 취재할 수 있게 된 배경을 되짚어보면 방역당국의 안이함과 기자의 취재 과욕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뒤끝이 개운치 않다.

우선 방역당국, 보도된 그대로라면 구제역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사실이 말뿐이었음을 보여준다. 구제역 발생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통제하고 방제와 관계된 인력이 아니면 절대 들여보내지 말아야 하는데도 기자의 출입은 허용됐다.

허용이 아니라면 통제선이 뚫렸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전국으로 확산되기까지 이렇듯 안일하게 대처해 온 건 아닌지 방역 당국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언론의 과잉 취재도 문제다. 현장을 중시하는 사진기자는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장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현장을 막는 관계자와 몸싸움도 하고 우회해 빈틈을 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기자도 사람이고 구제역 확산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지도 모를 가축과 직접 대면한다는 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때는 개인의 희생만 각오하면 되지만, 이번 경우는 축산농민과 가축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 같은 날 다른 모든 관련 사진은 통제선에서 멈췄다. 취재는 거기서 그쳐야 했다. 늦었지만 당국은 단 한 명도 통제선을 넘을 수 없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저는 지난 24일 아침 이 보도를 접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즉 방역당국의 통제가 뚫리거나 기자가 뚫고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 대해 성역없이 비판해야하는 언론으로서는 서로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기사가 나가기 이전에 어떠한 형태의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연락이 왔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게 됐다면 최소한 이런 내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약 기사가 나가더라도 제 입장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의혹이나 정황이 포착되면 즉시 취재를 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팩트(진실은 아니더라도)를 찾기 위한 확인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며 상대가 있는 기사라면 그의 입장을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사형수에게도 마지막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습니까.

당시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구제역 발생 소식을 듣고 화천군 사내면 월명리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하루 전에 출입통제선이 설치돼 있어 한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통제선 너머에서 구제역 양성 반응소가 1마리 나와서 해당 농가를 비롯해 반경 500m 이내는 모두 도살처분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날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이 통제선을 절대로 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두 공감하고 어느 누구도 이를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날 오후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했지만 마땅한 취재 결과물이 없어 좀더 기다리기로 할 때 누군가 통제선 후방에서 등장했습니다. 한 노인이 굴착기 기사에게 "여기다 파세요"라고 안내하길래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가 살처분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던 것입니다. 노인은 법 없이도 살 분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저 같은 산골기자가 공무원인줄 알고 "주사님, 주사님"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이 곳은 출입통제를 암시하는 석회석이나 통제선, 소독약 분무기 등 어떤 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의 양해를 얻어 외양간을 외부에서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도 방역당국에서 살처분 작업을 진행하지 않자 마지막 여물을 끓여 주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살처분 대상이 모두 감염됐다는 보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경 500m안의 소 가운데도 실제로 구제역에 감염된 소는 1~2마리에 불과하지만 최대한 감염을 막기 위해 감염되지 않은 소들도 억울하지만 함께 살처분하는 것입니다. 반경 500m내 감염되지 않은 소까지 꼭 살처분해야하는지는 이번에 짚어볼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반경 500m 외곽의 경우도 상황에 따라 '예방적 살처분'을 권고할 때도 있습니다.

이번 일이 발생한 뒤 저는 관련 계통을 통해 출입통제선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한국일보에 시정을 요청했습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오탈자와 미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하자나 착오가 있는 부분은 고쳐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는 28일자 반론문 '누가 알려왔다'는 짧은 문장이 전부입니다. `보도 주체가 어떤 점을 확인을 했다'는 형식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참담했습니다.

결국 저는 1인 시위와 법적 조치 등을 검토했습니다. 경계선을 침범했는지 여부만 확인했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 일파만파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성탄절 이브부터 매일 지옥같은 하루를 살아온 것은 보상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았으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 보도를 보고 불특정 다수가 비난을 해대는 악몽의 하루가 계속 이어질 것이니까요. 어떻게 연말연시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도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왜 서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바로 최종 사실확인을 미처 거치지 못한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기사를 쓴 분의 고통도 사실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바로 사실 확인이 안된 보도 내용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기사를 쓴 분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본의 아니게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휘말린 그 분도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도 현장에서 열심히 기사를 취재해온 분인데 저로 인해 더 이상 위축돼서도 안될 것입니다. 기사를 쓰지 않으면 오보를 낼 걱정이 없지만 더 기사를 취재하고 노력하는 기자들은 항상 실수할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원망하면서 제가 어찌 누구의 가슴 속에 닿을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뛰는 선후배 기자분께 당부합니다. 기사를 쓰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 확인하는 과정을 꼭 거칠 것과 기사를 쓰더라도 당사자의 입장은 꼭 반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발생한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고치는 것도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썼던 분도 이번 일은 하늘이 노력하는 사람을 시험에 빠뜨린 일인 만큼 모두 잊고 계속 정진하시기를 응원합니다.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들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뛰어온 열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앞으로도 좋은 기사에는 변함없이 박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이런저런 하소연을 받아주느라 고생한 경향신문의 멋진 사진기자이자 입사동기인 정지윤 기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까지도 아둔하게 가슴 속에 원망을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기자라는 운명으로 사는 이땅의 모든 이들에게 13월(희망)의 태양이 뜨기를 기원합니다.('에티오피아,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는 제가 에티오피아 시골 학교의 교실을 짓는데 벽돌을 보태기 위한 마음으로 최근 저술한 것인만큼 이 나라 어린이들에게도 희망의 태양이 뜰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연합뉴스 이해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