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장우성 기자 |
|
| |
위네바고 족은 북미 5대호 주변에 사는 인디언 부족이다.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1908~2009년)는 부족 사람들에게 마을의 평면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영 딴판의 그림이 나왔다. 이 마을의 주류격인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 신전을 중심으로 부족 사람들의 집들이 조화롭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을 그렸다. 그 반면 비주류 사람들의 그림은 마을 가운데 경계선을 긋고 양쪽에 집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을 놓고도 처지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천안함 사고를 놓고 양분되는 우리 사회와 언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천안함 문제를 놓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념적 편견이다. “북한 소행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라거나 “북한은 절대 아니고 MB정권의 음모가 있다”라는 예단 모두 위네바고 족의 오류를 답습할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와 언론에 두 가지 경향이 모두 나타나고 있지만 전자가 조금 더 심각해 보인다. 후자는 다분히 소수, 비공식적 공간을 통해 표출되나 전자는 공당이나 주류 언론을 통해서 견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당 국회의원은 노종면 천안함언론보도조사결과검증위원회 위원을 국정감사 증인석에 세워놓고 북한 3대 세습에 대한 입장까지 물었다. 정부 천안함 조사 결과를 신뢰하는 언론들은 문제제기를 할라치면 무조건 ‘종북·친북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네가 북한 추종자라면 벌을 받을 것이고, 아니면 입을 닫으라”는 식이다.
천안함의 진실은 철저히 상식과 과학의 영역에서 규명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가 북한어뢰 격침설을 의심하는 견해를 과학적 근거를 들고 반박했던 것은 환영할 일이었다. “북한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왜곡되던 논쟁을 과학의 궤도로 복귀시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논쟁은 다시 이념의 공간으로 침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념 논쟁은 블랙홀과 같다. 다른 건 아무 소용이 없다. “네 사상은 뭐냐, 넌 누구 편이냐”로 귀결되고 만다. 그 사이에 ‘사실’은 저 멀리 신기루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 내용은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한국씨 아들 천안 군이 평소 원수처럼 지냈던 아버지 형제 북한씨의 집 울타리 앞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범행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흉기가 발견됐다. 그러나 흉기가 북한씨 것인지, 그의 것이 맞다고 해도 범행에 쓰인 것인지 명백하지 않다. 혈흔과 지문(흡착물질) 분석에 의문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씨 집 누가(연어급 잠수정) 와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불확실하다. 목격자(백령도 초병)도 없었던 셈이 됐다. CCTV(TOD)에도 범행현장은 담겨 있지 않고 피해자의 앞뒤 동선과 범행지점(폭발원점)의 상관관계만 더 알쏭달쏭해졌다. 수사 당국 발표는 번복되기 일쑤고 게다가 피의자들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범죄를 심증으로 단죄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6하 원칙 중 어느 것도 똑 부러지는 게 없는 지경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정부 발표 이외의 것을 백안시했던가? 의심과 호기심이 생명인 기자가 가만있는 게 온당할까?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