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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춘 기자상 심사위원(오른쪽)이 지난달 29일 경주 코모도호텔에서 열린 ‘기자상 포럼’에서 발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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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상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단발성 특종보다는 탐사·분석보도 등으로 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성춘 기자상 심사위원(제14대 기자협회장·현 고문)은 지난달 29일 경주 코모도호텔에서 열린 ‘공정한 기자상 제도 정착을 위한 기자포럼’ 발제 ‘기자상의 국내외 사례와 개선방안’을 통해 특종과 기자상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춘 심사위원은 “눈부신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회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다양화·세분화되고 있다”며 “언론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발상과 사고의 전환, 자기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재래식 사고와 관행대로 늑대 꼬리 건드리는 식의 단발·반짝 특종을 무비판적으로 언론상의 선정대상으로 고려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더 깊고 의미있는 진실을 안겨주는 탐사보도, 분석보도, 연구보도, 추적보도에도 언론상의 무게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기자상 대상 안나오는 것 문제 안돼”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는 기자상 제도의 쟁점도 논의됐다. 8년째 한국기자상 대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걱정하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며 “국내 일선 기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만큼 반드시 대다수 언론인·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역작을 고르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청단계에서부터 책임있는 추천 △온정주의·적당주의적 심사 배제 △상 남발 주의 △특별상·공로상의 구체적 심사기준 마련 등도 개선점으로 꼽았다.
‘저널리스트’에 대한 범위 규정도 외국 사례를 들어 재고할 대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 저널리스트란 언론계뿐 아니라 문학·예술 일반 등 광범위한 개념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권위를 가진 퓰리처상만 해도 14개 수상 부문 가운데 언론분야는 8개, 문학 5개, 음악 1개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언론분야 8개 부문도 신문사 공익사업, 가장 훌륭한 지방기사, 최상의 전국기사, 최상의 국제기사, 논설·시사만화·사진 등으로 독특하게 이뤄져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인식 차이 때문에 국제기자연맹(IFJ)이 한국기자협회를 제명하려 했다는 일화도 공개됐다.
이 위원에 따르면 IFJ는 1976년 총회에서 한국을 언론탄압국가로 지목해 제명을 추진했다. 한국기자협회가 당시 필화 사건으로 구속된 ‘저널리스트’ 김지하 시인에 대한 구명활동을 벌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서구의 통념으로는 문인도 저널리스트인데 한국의 저널리스트 대표단체가 나서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총회에 참석한 한 영국 기자가 “일본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대회에서도 저널리스트 개념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며 “동서양 차이가 있는데 이를 이유로 제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득해 제명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다.
또한 8년째 기자상 심사를 맡고 있는 이 위원은 공정성을 자신하며 참석자들에게 “동료 회원들에게도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기자상 심사 때마다 위원들 사이 크로스체크를 철저히 하고 불꽃 튀는 토론을 벌이는 등 7~8년 전과 비교해서도 과정이 매우 공정·치열해졌다”며 “서울·지역, 신문·방송·통신을 기계적으로 안배할 여력도 없으며 협회 간부가 부탁한다고 해도 될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언론민주화 이후 권력 비판 수상작 봇물이은 주제발표 ‘언론보도의 시대적 흐름과 기자상 수상작 경향’에서 권영철 CBS 선임기자(전 기자상 심사위원)는 한국기자상 수상작의 시대적 보도경향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권영철 선임기자는 1967년 제정돼 2009년까지 41회에 걸쳐 배출된 2백86건의 수상작을 분석, △1967~79년 박정희 정권기 △1980년부터 6월항쟁 이전인 1986년까지 전두환 정권기 △1987년 6월항쟁~1992년 노태우 정권기 △1993년~현재 등 4개 시기로 구분했다.
첫 번째 시기인 박정희 정권기 수상작은 1회 수상작 ‘이수근 판문점 탈출’(TBC), ‘불국사 석가탑 파손’(한국일보) 등에서 나타나듯 상황 보도가 주였으며 구조적인 비리나 권력형 부정부패를 파헤친 기사는 아주 드물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두환 정권기에도 일상적인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경향을 유지했으며 “보도지침이 엄존했던 언론 암흑기로 보도의 내용이나 방향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이유로 꼽혔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비롯된 언론민주화 이후 수상작 경향은 달라졌다. 1987년 제19회 한국기자상을 받은 동아일보·중앙일보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관련 보도’를 필두로 1988년 ‘전경환 돌연출국’(한국일보) ‘5·18 상황일지 단독입수 보도’(경향신문) 등 시국관련이나 권력형 부정비리에 대한 보도가 주를 이루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보도 부문과 지역기획보도 부문이 신설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의 경향 변화도 눈에 띄었다. 속보 위주 보도에서 심층보도로 전환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1993년 제25회 한국기자상에 선정된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앙일보) ‘남산의 부장들’(동아일보) ‘4·3을 말한다’(제민일보) 등이 예로 제시됐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보도도 연달아 1998년에는 김현철씨 관련보도 4건이 한국기자상의 영예를 차지한 데 이어 99년 ‘안기부 북풍공작’(시사저널), ‘옷로비 사건’(한겨레), 2001년 ‘이용호 게이트’(한국일보) 등으로 이어졌다.
권영철 선임기자는 “한국기사상이 그 시대 언론들의 보도경향을 대표한다고 보기엔 어색한 점이 있다”면서도 “훌륭한 보도에 권위있는 기자상이 주어지면서 기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선의의 경쟁을 촉진시키는 기능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