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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용 6.15남측위원회 언론본부 공동상임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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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헌법에 이어 당 규약에서도 ‘공산주의’ 삭제
지난 9월 28일 북쪽에서는 30년 만에 중요한 노동당 행사가 치러졌다. 지난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처음으로 당대회에 버금가는 ‘조선로동당 대표자회’가 개최됐다. 모처럼 열린 이 회의에서 무엇이 논의됐을까. 당초 북쪽에서는 그 의제를 ‘최고 지도기관 선거’ 한 가지로 밝혔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의제는 세 가지로, 1.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를 총비서로 재추대, 2.노동당 규약 개정, 3. 노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등이다.
지금 남쪽에서는 노동당 대표자회의 초점을 온통 ‘후계자’에 맞추고 있으나 그것은 의제에는 들어있지 않다. 물론 김정은이라는 인물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사실이 관심을 돌릴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 규약 개정 또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주요 사안이나, 우리가 지금 보고 있듯 ‘3대세습’만을 놓고 난리법석이다.
당 규약 개정은, 그것이 남쪽과 연결된, 다시 말해 통일문제와 결부된 내용의 개정은, 언론이라면, 또 정부나 시민사회단체 등 관계자들이라면 응당 관심을 돌려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당 규약에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 명시됐다는 점을 근거로 남쪽에서는 분단 60여년동안 북쪽이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북 하면 적화통일’로 마치 자동반사처럼 연상돼 온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우선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북쪽의 1992년 개정헌법이다. 남쪽 헌법 제3조 이른바 영토조항과 4조 자유민주적 평화통일 조항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기존 북쪽 헌법(사회주의 헌법) 제5조였는데, 92년도에 개정한 것이다(연합뉴스 2000. 6.23 보도).
북 기존헌법 5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외세를 물리치고 민주주의적 기초 우(위)에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며 완전한 민족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규정했었다.
그런데 92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채택한 개정헌법은 제9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벌여)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규정했다.
이른바 적화통일의 야욕이 보인다는 ‘전국적 범위에서 투쟁’ 대목을 빼고 7.4공동성명의 통일 3대원칙을 집어넣은 것이다.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의 조국통일연구원 박동근 참사는 북 헌법 제 9조를 거론하면서 남 헌법 제 4조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었다.
박 참사는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 회견에서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요인에 대해 ‘미국’이라는 외세의 간섭과 남쪽 역대 집권자들의 외세의존정책을 꼽은 뒤 “‘대한민국’ 헌법 제4조와 함께 그것을 구체화한 보안법도 철폐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 제4조와 보안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그 누구도 북과 남의 참된 화해와 단합, 협력과 교류, 평화와 통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북 헌법 제9조를 거론, 북 헌법 통일조항에는 어느 한 체제로의 통일을 규정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방제 통일이) 북이 사회주의 제도를 남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통일하려 한다는 이른바 ‘적화통일’도, 남의 제도를 북에 옮겨놓을 것을 꿈꾸는 ‘흡수통일’도 불허함으로써 ‘제도통일’이 아니라 ‘민족통일’을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실은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문한 것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92년 헌법개정 뒤 20년쯤 지나 북쪽은 또 한번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였다.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3개 조항에 걸쳐 있던 ‘공산주의’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 구헌법 29조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중략) 창조적 로동에 의하여 건설된다”, 40조 “공화국은 문화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중략)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자로 만들며 (하략)”에서 각각 공산주의 단어를 지웠다. 또 43조 “국가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구현하여 후대들을 (중략)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에서 ‘공산주의적 새 인간’을 ‘주체형의 새 인간’으로 바꿨다.
북쪽이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싹 없애 버린 것이 주목할 일이 아닌가. 그러나 당국은 물론 대다수 전문가들조차도 1990년대에 이은 2000년대의 북 헌법 상의 중대변화상을 무시해 왔다. 북은 노동당의 영도를 받는 당 우위 국가이며, 따라서 당 규약이 변하지 않는 한 변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거였다.
드디어 북쪽은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 규약에까지 손을 댔다. 당 규약 서문에 노동당의 ‘당면목적’과 ‘최종목적’이 규정돼 있는데 여기에 헌법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개정규약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고 했다.
종전 규약의 당면목적이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완전 승리’였는데 이것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바뀌었고 최종목적이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었는데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으로 대체됐다.
어떤 이는 개정 규약에서도 ‘전국적 범위’가 그대로 살아 있으니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이, 또 ‘인민대중의 자주성 실현’이 전 한반도의 공산주의화를 기도하는 ‘적화통일 야욕’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번 규약 개정으로 적어도 ‘북 하면 떠오르는 적화통일 야욕’이라는 자동반사적 반응은 합당하지 않게 됐다는 점, 이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북쪽은 당 규약까지 연방제 통일 방식에 합치되게 손질함으로써 북의 적화통일에 대한 남쪽의 위구심을 논리적으로, 제도적으로 없앤 것이다.
그렇다면 남쪽의 통일전략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6.15공동선언은 제2항에서 남쪽의 연합제안과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으며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가.
당대표자회에서 북쪽의 통일전략이 명확히 정리됐는데, 남쪽에서는 그 중차대한 문제에 주목하고 이 정부의 통일전략은 무엇인가를 물을 대신, 3대세습에만 온통 정신이 팔린 나머지 심지어는 이른바 진보정당에 왜 입을 다물고 있느냐고 강박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달은 안 보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또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10일 노동당 창당 행사를 미국, 일본 기자 등 외국기자 80여명이 현지 취재했는데도 남쪽 기자들만 쏙 빠졌다는 사실이다. 언론사에 또 하나의 오점이 남게 됐으나 그것이 오점인 줄도 모르는 자들의 목청만 높은 세상이다.
기록을 위해 적는다. 남쪽 언론본부와 북쪽 언론분과는 2008년 11월까지는 잘 교류해 왔으나 그 후로는 남쪽 당국의 거부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 간의 언론교류까지 막은 이 정권의 반언론적, 반통일적 행태는 역사에 의해 추궁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