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화 공헌 불구 ‘386’과 ‘60대’사이 ‘낀 세대’ 상실감언론계를 이끌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기자들의 자화상은 어떨까. 연초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격인 55년생의 은퇴를 앞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전체 인구 중 14.6%(7백21만명)를 차지한다.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가장 역동적인 삶을 산 세대들이다. 또한 이들의 삶은 ‘빈곤의 시대’, ‘군사독재 시대’, ‘민주화 시대’를 거치는 등 역사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타고난 ‘민주화 DNA’ 지사형 기자 밑거름베이비붐 세대 기자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에 유신정권을 보고 자랐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을 학생으로 혹은 넥타이부대 일원으로 경험했다.
베이비부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민주화 DNA’는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 그들이 ‘지사형 기자’로 커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
현재 베이비부머 중 언론사 사장으로는 경향신문 송영승 사장과 한겨레 고광헌 사장(이상 55년생) 등이 있다.
또한 파이낸셜뉴스 남상인 편집국장(55년생), 동아일보 심규선 편집국장(56년생), 경향 박노승 편집국장, 조선일보 홍준호 편집국장(이상 57년생), 매일경제 조현재 편집국장, 서울신문 이목희 편집국장(이상 58년생), 문화일보 박학용 편집국장, 한겨레 성한용 편집국장, 한국일보 이종재 편집국장, 헤럴드경제 권충원 편집국장(이상 59년생), 내일신문 남봉우 편집국장, 세계일보 김선교 편집국장, 중앙일보 민병관 편집국장, 한국경제 김정호 편집국장(이상 60년생) 서울경제 김인영 편집국장(61년생) 머니투데이 유승호 편집국장(63년생) 등이 베이비붐 세대다.
이처럼 베이비붐 세대 언론인들은 사장을 비롯해 주요 국장과 보직부장 등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세대들이 언론계에 기여한 바는 사내 민주화를 이끄는 데 구심점이 됐다는 것.
1987년 한국일보를 시작으로 출범한 노동조합이나 기자협회 활동 등을 통해 사내 혈맥을 뚫는 역할을 해 왔다.
62년생인 한겨레 안재승 전략기획실장은 “베이비부머들은 광주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을 이끈 민주화 세대”라며 “이들 세대 기자들 또한 진보·보수언론을 막론하고 80년대 말부터 노조나 기자협회 활동을 통해 공정보도에 힘쓰는 등 사내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가정보다 일 중시한 ‘회사형 인간’베이비붐 세대 기자들은 우리 사회의 발전상과 맥을 같이해 왔다.
민주화 열기와 함께 수많은 신문이 복간과 창간을 하면서 입사 동기 20명 안팎이 될 정도로 언론의 황금기를 경험했다.
당시만 해도 임금 수준이 대기업과 비슷했고 지금처럼 기자들이 본업 외에 영업이나 특집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IMF외환위기를 맞아 일부 기자들은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지 못했고 또 일부는 2000년 전후로 불어 닥친 IT붐을 타고 이직하기도 했다.
이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었지만 정작 가정과 사회에서는 ‘회사형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한마디로 그들의 삶은 일로 점철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59년생 한 기자는 “평생을 일만 알고 지내온 베이비붐 세대 기자들이 은퇴 후 갑작스럽게 사회적인 미아가 될까 우려스럽다”며 “가정생활이나 취미활동보다는 일과 술밖에 몰랐기 때문에 은퇴 후 배우자와 공유할 수 있는 생활이나 취미라는 게 어떤 것이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 기자들은 자신들을 소위 ‘낀 세대’로 자평한다.
이들은 참여정부 당시 386세대가 등장하면서 사회 전면에 나설 기회를 잃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60대 이상이 전면에 나서면서 낀 세대가 됐다.
58년생 한 언론사 고위간부는 “마치 386세대가 개혁의 선봉에 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세대가 일궈 낸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사회 변화에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을 향유하지 못했고 구세대로 취급당하면서 상대적인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급변한 미디어환경과 은퇴후 삶 ‘고민’이들에게 높은 파고와 같이 달려드는 미디어환경 변화 역시 버거운 짐이다. 이들 대부분이 사내 의사결정자이기 때문에 회사의 운명과 후배 기자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62년생인 한 기자는 “지난 20여 년 간 기자생활을 해 오면서 느꼈던 큰 변화는 ‘가로쓰기’와 ‘노트북’ 정도였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불어닥친 모바일, 태블릿PC,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의 미디어 변화는 지난 20여 년을 놓고 봤을 때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변화”라고 밝혔다.
테크놀로지에 언론이 끌려가면서 파생된 문제에 직면, 전통적인 언론 역할과의 사이에서 개념 정립에 혼동을 겪기도 한다.
매경 조현재 편집국장은 “윗세대의 경험과 창조적 개혁을 이끄는 가교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기자 위상 하락과 신문산업 위기로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든다”며 “다음 세대가 더 잘 해줄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교육비 문제와 자녀 취업, 그리고 본인의 은퇴 후 진로가 이들 세대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모든 고민은 경제력과 연관된 것.
기자 출신 비편집국 한 국장은 “벌어놓은 것은 없는데 향후 진퇴를 결정해야 하는 나이에 들어섰다”며 “마감시간은 10분 전인데 취재는 안됐고 기사송고를 해야 하는 시점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주변환경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 비해 기업 문턱도 높아졌고 결국 눈을 낮춰 언론계로 돌아오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머니투데이 이창민 편집기획상무는 “정부가 차관급 이상이 은퇴할 경우 임금을 지원하면서 대학 겸임교수로 보낸 것 같이 언론진흥재단에서 이 같은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다”며 “이럴 경우 언론사, 언론인, 대학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