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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바친 손명환 기자의 정신을 기리며

창립 46주년 회원들께 드리는 글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  2010.08.17 09: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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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  
 
지난 11일 부산경남 민영방송 KNN 손명환 기자가 취재현장에서 순직했습니다. 태풍 뎬무가 대한민국을 덮쳐올 때 손 기자는 태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손 기자의 오른손엔 여느 때처럼 육중한 ENG 카메라가 들려 있었습니다. 거센 파도가 손 기자의 온몸을 덮쳐올 때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손 기자가 그때 카메라만 놓았다면 아마 오늘 우리와 함께 한국기자협회 창립 46주년을 축하했을 것입니다. 그는 기자이기에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엔 시민들에게 알려드릴 생생한 태풍현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재난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손명환 기자는 태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손 기자는 슬하에 두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장녀가 지난 2007년 아버지 손 기자에게 쓴 편지는 대한민국 기자 아버지 모두에게 쓴 글입니다. 손 기자의 딸은 “아빠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차가운 강에서, 바다에서, 물속에서, 때로는 배 위에서 힘들게 고생하며 촬영하신 특집방송을 볼 때면 엄마의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가슴이 메어졌습니다”라며 기자로 일하는 모든 아버지에게 힘내시라고 말했습니다.

손 기자의 부인은 영결식장에서 “손명환이란 이름 석 자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해 달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 8천여 명은 손명환 이름 석 자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기자협회는 1964년 8월 17일 창립됐습니다. 마흔다섯 살 나이에 순직한 손명환 기자가 태어나기 1년 전 여름이었습니다. 기자 선배들은 1964년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무엇이 화급했기에 한국기자협회를 창립했을까요? 박정희 정권은 6·3사태 계엄이 끝나도 언론통제가 가능한 탄압법을 만들려고 했고 이에 끝까지 맞서기 위해 현장 기자들이 중심이 돼 한국기자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한국기자협회가 창립된 지 어느새 마흔여섯 개의 성상이 지났고 대한민국은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역사는 발전했지만 정권이 언론과 언론인을 길들이고 겁박하는 행태는 정도의 차이만 있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6년 전 기자 선배들이 주창했던 한국기자협회 ‘제1강령 언론자유 수호’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역사 발전 속에 대한민국의 국부는 증가했지만 기자들의 살림살이는 크게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기자협회보가 최근 3년 연속해 기자협회 회원들께 기자에 대한 직업만족도를 물었을 때 80% 넘게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모순되게도 50% 넘는 기자들이 이직을 고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많은 기자 동료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쳐 취재현장을 떠났습니다. 큰 돈을 벌기 위해 기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생활인으로 기자로 사는 것이 녹록하지 못한 처지가 됐습니다.

인류에 기자라는 직업이 생긴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자들은 과분한 호의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나친 호의호식을 했다면 권력에 아첨하고 돈 많은 자에게 아양을 떤 일부 사이비 기자일 것입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기자의 길을 가고자 할 때 그 마음을 되새겨 봅시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손명환 기자의 정신을 기립니다. 태풍이 불어오는 상황 속에서도 권력의 압력과 회유가 사방을 가득 메워도 초심으로 돌아가 불굴의 기자정신을 지킵시다. 그리고 멋 훗날 우리의 육신은 스러질지라도 손명환 기자의 아들과 딸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듯 우리의 자녀들에게 “아버지, 어머니가 그때 멋진 기자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기자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나갑시다.

한국기자협회장 우장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