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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창립 46주년 특별 좌담회에 참석한 양기대 광명시장(왼쪽)과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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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 지방선거 결과 7명의 기자 출신 자치단체장이 탄생했다. 한국기자협회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단체장도 많았다. 특히 유종필 서울시 관악구청장은 한겨레 퇴사 후인 1994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양기대 경기도 광명시장은 동아일보 기자 시절 한국기자상 2차례, 이달의 기자상 9차례 수상했다. 이 좌담은 지난 2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두 사람은 “친정에 온 기분”이라며 1시간여 동안 지자체장으로서 포부, 기자사회에 바라는 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취임하신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요즘 어떠십니까.유종필(이하 유)=한 달 동안 업무보고도 받았고요. 수십 개가 넘는 각 지역 단체 대표들이 면담을 요청합니다. 비공식적으로 만나자는 사람, 오겠다는 사람, 오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단체장이 새로 취임하면 민원인들도 몰려오죠. 어떻게 한 달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이렇게 바쁘게 일정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양기대(이하 양)=사실 정치 입문 뒤 기초단체장을 하리라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와서 한 달 해보니 “하기를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는 위기이면서 큰 기회입니다. 기자할 때 특종하는 과정에서 속된 말로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이번에도 사고를 하나 쳤지요. 보금자리 정책 관련해서 정부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야당 단체장의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오해받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정부와 언론이 긍정적으로 봐줘서 이번에는 사고를 잘 쳤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앞으로 중앙정부와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짧았지만 좋은 경험을 하고 긍정적 사고를 갖게 된 한 달이었습니다.
기자 출신 강점은 ‘진실 추구’
-기자 출신 자치단체장의 장점이나 경쟁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양=기자의 장점은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죠. 큰 틀에서 빠르게 사태 본질을 파악하고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판을 크게 보는 겁니다. 항상 중앙과 연계 속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습니다. 우리 시청 내부 문제도 종합적인 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기자 생활이 상당히 도움이 됐습니다. 기자 출신들이 글, 생각을 잘 축약해내는 장점이 있죠. 표현을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니 시간을 절약해 시정을 펼치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유=정답을 거의 다 말씀하셨네요.(웃음) 덧붙이자면 기자 출신들은 직업상 정의감이 있습니다.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기본적 정의감은 어떤 기자라도 갖고 있어요. 정의감에 기초해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려 하고 관계 공무원 의견 등을 듣고 사태 상황을 파악합니다. 진실 보도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든 진실이 무엇이냐 따지는 게 기자의 직업병이죠. ‘다정도 병’이라는데 이런 게 기자의 병입니다.(웃음)
-앞으로 4년 임기 동안 이것만큼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꼭 해놓겠다는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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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종필 관악구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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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 공약서가 12페이지입니다. 그 절반이 도서관 공약입니다. 나머지는 보육·교육 내용이죠. 관악구 비전이 ‘사람중심 관악특별구’입니다. 관악을 지식문화특구, 도서관특구로 만들겠다는 게 제 목표죠. 빌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조국도, 어머니도 아니고 동네 작은 도서관”이라고 말했어요. 하버드대를 자퇴하고 집에서 놀 때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영감을 얻어 사업을 하고 성공했다는 뜻이죠. 도서관은 멀리 있으면 잘 안갑니다. 집 가까운 데 있어야 돼요.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도서관을 꾸미겠다는 게 제 계획이에요. 4년에 다 안 되더라도 이건 꼭 해낼 겁니다.
양=보금자리 신도시 등 광명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 사업들이 곧 진행됩니다. 제 임기 중 다 완성되지는 않으나 광명의 미래를 위한 기본 틀을 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 30~40대 세대가 광명 인구의 70%입니다. 학력수준과 교육열이 매우 높아요. 그러나 지금까지는 교육 환경이 부족해서 인근 서울 목동이나 강남으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광명을 ‘교육 때문에 돌아오고 교육 때문에 찾아오는 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기자 시절부터 부정부패 척결에 관심이 컸습니다. 우리 사회 부패 척결에 기여하겠다는 게 정치에 입문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광명의 공직사회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청렴문화를 솔선수범하는 도시 이미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기자 말 들어 손해볼 것 없다”-기자 선배로서 후배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양=집권 여당 시절 권력 가까이도 가봤고, 수석대변인도 해봤습니다만 정보양이 기자 때보다 엄청나게 늘고 깊어지더군요. 기자들이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죠. 나름대로 기사를 쓰는데 대부분 맞아요. 지자체장이 되기 전부터 기자들의 끈기와 부지런함, 집요함, 선후배간의 관계 등 상당히 많은 장점을 봤습니다. 그러나 가끔 마음대로 쓰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지자체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회사나 기자 개인 이해관계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해서 기사를 쓰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죠. 왜곡된 기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 고통당할까 생각하면 저도 기자 시절을 반성하게 됩니다. 저야 언론인·정치권 생활도 했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됐으니 최소한 방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서민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울분이 생길 법 합니다.
유=저는 사실 아무런 미래 설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기자를 그만 뒀어요. 그러다 보니 한동안 정처 없이 떠돌기도 했죠. 그런데 언론계 관련 일에서 한 번도 떠나본 적은 없어요. 정치권 와서도 그랬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당 대변인 때 “내가 우리나라에서 기자를 제일 많이 안다”고 하던데 전 “내가 더 많이 안다”고 했어요.(웃음) 기자들을 많이 상대하면서 하나 느낀 게 있죠. ‘기자들이 하는 말 들어서 별로 손해볼 게 없다’는 거죠. 기자들 하는 말이 대부분 맞아요. 당대변인 할 때도 늘 기자들한테 물어봤어요.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하던 시절 당시 노 후보께서 판단이 잘 안서는 것을 저한테 많이 물어보셨습니다. 어떤 것은 “조금 있다 전화 올리겠다”고 하고 기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제가 민주당 대변인을 4년 10개월 지냈습니다. 최장 기간 대변인을 지낸 비결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기자들에게 늘 물어봤다는 겁니다. 국회도서관장 할 때도 그랬고 구청장 된 뒤에도 기자들에게 많이 묻습니다. 집단지성이란 말이 있잖아요. 한 사람이 훌륭한 것보다 집단지성이 낫죠. 저는 기자들의 집단지성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람입니다.(웃음)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 더 레코드 -기자 시절 겪었던 일 중에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게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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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대 광명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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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가 기자상을 좀 많이 탔죠. 가장 큰 원동력은 평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입니다. 어떤 말을 해도 오프 더 레코드를 원하면 반드시 지켰고 인간적 신뢰를 손상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번 깬 적이 있어요. 김대중 정부 출범 뒤 김영삼 정부 비화를 동아일보에 썼습니다. 이수형 전 기자(삼성그룹 상무보)와 같이 썼죠. 당시 YS정부 한 고위 관계자가 “YS가 박철언씨를 손을 좀 보라는 취지로 이야길 했다”고 하는 거에요. 물론 기사를 안 썼으면 하고 말한 거죠. 그걸 고민하다가 썼습니다. 기자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프 더 레코드를 깼죠. 나중에 사과도 하고 같이 밥도 먹었습니다만.(웃음)
유=한국일보 기자 초년생 때 일이죠. 당시는 5공 시절이라 안기부 요원들이 언론사에 상주하다시피 했습니다. 사무관이 와서 회장실, 사장실 등 각 임원실, 편집국장실 죽 ‘마와리’를 돌아요. 이게 상식화됐어요. 그래서 안기부 요원이 들어오면 몰아내자고 몇몇 선배와 결의를 했습니다. 마침 야근을 시작하는데 안기부 직원이 편집국에 들어오는 거에요. 결의는 했지만 다들 선뜻 막지는 못했죠. 제가 “당신, 왜 들어왔냐”고 나서서 내보냈죠. 편집국에서 화제가 됐는데 그 뒤로 일주일 정도 그 직원이 출입을 안합디다. 그런데 기자를 그만 둔 뒤 어느 자리에서 누가 인사를 해요. 보니까 제가 몰아냈던 안기부 사무관인 거에요. 그 분도 안기부를 그만 뒀더군요.
양=1995년 이형구 당시 노동부 장관의 산업은행 총재 시절 비리를 보름 간 추적해서 썼죠. 기사를 쓰고 새벽에 들어가서 집사람에게 “오보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어요. 당시만 해도 비장하던 시대니까요. 결국 사실로 확인됐죠. 지금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도 일선에서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기자들이 많을 겁니다. 제가 법조팀장 때 후배들에게 “우리 기자 한사람이 역사를 바꾼다. 세상과 역사를 바꾼다는 심정으로 하자”고 말을 자주 했습니다. 기자와 언론의 사명과 역할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한 기자와 한 언론사 힘이 크다는 걸 정치 입문한 뒤엔 더욱 뼈저리게 느낍니다. 중앙 뿐 아니라 지역 작은 언론이라도 ‘기자는 세상과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비판정신이 제 1기능-종이신문 쇠락, 미디어환경 급변, 진보·보수지 다툼 등 기자들의 고민이 많습니다.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유=지금은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요. 지금 ‘기자 정신’을 말하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요. ‘기자 정신’을 따지다보면 기본적인 정보에 접근도 못할 듯합니다. 제가 현역 시절에도 “기자 정신이 실종되고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더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럴수록 이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한겨레신문 창간의 아버지인 송건호 선생을 가까이 모셔봤습니다만 그분도 기자 정신을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기협에서 슬기롭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양=언론 상황이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정보 전달자 역할을 하는 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기자는 역시 ‘비판 정신’이 중요합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어느 기관이라도 비판견제 기능이 없다면 썩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다른 게 중요하다 해도 비판과 견제 역할이 제 1기능이죠. 기자들은 이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 기자 정신은 사라집니다. 고민하는 기자가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것입니다.
좌담=김신용 편집국장, 정리=장우성 기자
<프로필>
■유종필 관악구청장
△1985~1988년 한국일보 기자
△1988~1993년 한겨레 기자
△1994년 기자협회보 편집국장
△1995년 서울시의원, 국민회의 부대변인
△1997~199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대변인
△1998년 고건 서울 시장 인수위원회 부대변인,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2000년 KTV 사장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대변인
△2003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2005~2008년 민주당, 통합민주당 대변인
△2008~2010년 국회도서관 관장
△2010년 지방선거 관악구청장 54.6% 득표 당선
■양기대 광명시장
△1988~2004년 동아일보 기자, 사건·법조팀장 역임, 이달의 기자상 9차례 수상(역대 2위), 한국기자상 2차례 수상(1997년, 2000년)
△2004년 총선 경기 광명을 출마
△2006년 열린우리당 수석부대변인
△2010년 지방선거 광명시장 57.2% 득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