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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이윤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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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기도 한 오름. 그러나 그 아래 일제가 파놓은 1백20여 개에 달하는 지하갱도 기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 한라일보 이윤형 탐사전문기자가 이를 세상에 알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 이윤형 기자는 특별취재팀(사회부 표성준, 사진부 이승철)을 구성해 일제가 파놓은 지하갱도를 탐사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을 계속해 이미 ‘일제 전적지를 가다’라는 특집기사는 1백30여 회를 넘겼고 세상은 지하에 묻혀 있던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됐다.
이 기자에 따르면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도에 7만5천여 명의 일본군을 주둔시켰다. 미군이 상륙할 경우 제주도가 일본 본토공격을 위한 전진기지가 될 것이기 때문.
이에 일본방위청은 1호에서 7호까지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제주를 결7호 작전지역으로 해 제주 오름 지하에 인공 땅굴을 파고 해안가를 자살 특공기지로 만드는 등 섬 전체를 요새화하기에 이른다.
이 기자는 “광복 60주년이던 2005년까지 일제 지하갱도 기지는 거의 무관심 속에 놓여 있었다”며 “일제가 저지른 역사의 상흔들이 그 실체를 규명하지도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질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를 파헤쳐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 기자는 처음 탐사보도를 시작할 때 30〜40회 정도에서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탐사를 하면 할수록 ‘고구마 덩굴 딸려 나오듯’ 오름 속에 만들어진 지하갱도들이 속속 발견됐다. 60여 년간 전인미답이었던 공간이 이 기자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하갱도를 찾기 위해 무작정 산속을 헤매는 것은 다반사, 갱도 내부 탐사는 스릴을 넘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파놓은 지 60년이 넘은 인공굴이다 보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
“위험하다 싶으면 한 사람은 갱도 밖에 남겨둡니다. 또 갱도가 미로처럼 생겨 출구로 되돌아오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긴 끈을 풀어놓으면서 전진합니다.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실제 갱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숨이 턱턱 막혀요. 집요한 일본군의 실체에 섬뜩함도 느껴지고요. 제주도민뿐 아니라 육지민까지 동원됐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가스불 하나에 의지해 땅굴을 팠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들죠. 복잡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GPS, 나침반, 헬멧, 로프, 손전등, 비상구급약통 등은 기본이다. 헬멧을 벗었다간 날카로운 천장에 부딪쳐 머리를 찢기기 일쑤다.
지하이다 보니 사진 촬영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카메라를 들고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렌즈에 습기가 차 올라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랜턴으로 렌즈를 비춰가며 말리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이렇게 힘겨운 취재는 결국 큰 결실을 맺었다. 그동안 제주 일제 전적지에 대해 무관심하던 자치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해 2008년부터 2년간 8곳에 대한 학술조사를 통해 실체규명에 나선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제주 전역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12월엔 정부가 몇몇 대상지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등 전향적 조치를 취했다. KBS ‘역사추적’이 2회에 걸쳐 지하갱도 기지를 조명한 것도 이 기자의 활약 때문이었다.
이 기자는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인데 여전히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한 상처는 우리 사회의 고통으로 남아 있다”며 “그러나 어두운 과거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조명작업은 아직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제 군사시설은 고통스러운 역사현장이자 세계전쟁사의 중요한 사료”라며 “제주도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널리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