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강릉시 경포호수는 당시 지역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소년도 방학을 맞아 그곳으로 낚시를 하러갔다. 미끼는 삶은 감자가 고작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입질이 왔다. 낚싯대가 휘청했다. 짜릿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소년은 몇 십 분간 안간힘을 썼다. 1m가 넘는 초대형 잉어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에게 이를 지켜보던 노인이 “이렇게 큰 잉어는 ‘호수 지킴이’이니 놓아주라”고 일러줬다. 소년은 5백원짜리 동전만한 비늘을 떼어 간직하고는 다시 잉어를 호수로 돌려보냈다.
강원도민일보 김형곤 양구 주재기자의 일화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잉어가 마치 살려달라는 듯한 눈망울로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런 짜릿한 경험 때문일까. 김 기자는 준프로급 낚시전문가이자 낚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3월부터 주말판에 ‘대물낚시’, ‘낚시광장’ 등을 연재해 오고 있는 것. 독자들이 장문의 팬레터를 보내오는 등 호응도 좋다.
강원도의 물속 사정을 김 기자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로 가야 손맛을 느낄 수 있는지부터 현장에 적합한 미끼, 낚시법 등을 알기 쉽고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다. “직접 낚시를 다녀온 느낌”이라는 메일을 받을 만큼 현장감 있는 기사를 위해 직접 현장을 찾거나 현지 낚시꾼들의 말을 생생히 전하기 위해 1시간이 넘는 전화인터뷰를 불사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낚시꾼들이 잡은 최고의 대물을 소개하는 코너가 사진을 구하지 못해 중단될 처지에 놓인 것. 하지만 차츰 애독자들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다양한 제보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강원도민일보의 인기기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게 낚시에 몰두하는 걸까. 보통 주말을 이용해 낚시를 한다는 그는 낚시가 바로 휴식이자 운동, 여행이라고 했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휴식이 되고 운동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운동보다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게 해주는 게 낚시”라는 예찬론이다.
바쁘고 고된 기자일을 하면서 낚시는 즐거움보다는 휴식, 그리고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정적 속에서 만나는 새벽의 물안개, 바람소리 같은 것들이 자신을 반추하게 하고 자연의 경이로움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춘천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시간을 쪼개 인근의 공지천이나 소양호 등을 찾았다. 삼척 주재기자로 발령 난 후에는 바다낚시를 다녔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서 최남단인 삼척까지 갯바위가 즐비한 풍광 좋은 낚시포인트가 많은 곳으로 그에겐 천국이었다.
특히 삼척 임원에 있는 도미굴이라는 포인트는 감성돔이 많은 전국 최고의 포인트로 2~4월에는 누구나 감성돔의 손맛을 느낄 수 있다고 기자들에게 추천했다.
강원도에는 붕어, 잉어, 가물치, 송어, 은어 등 민물고기를 비롯해 청정지역이 많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나왔던 플라이 낚시도 가능하다는 소개도 덧붙였다. 또 바다낚시로는 감성돔, 벵에돔, 우럭, 농어, 숭어, 농어 등 어종도 풍부하다고 한다.
이렇게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그에게 혹시 낚시대회 참가 경험같은 것은 없느냐고 묻자 껄껄 웃음이 돌아온다.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과는 달라 낚시대회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그는 6년 전 강원도 홍천에서 있었던 낚시대회를 떠올렸다. 당시 다섯 돈짜리 금반지를 등에 건 큼지막한 붕어를 낚았던 것.
그는 이 일에 대해 “낚시바늘이 붕어 입이 아닌 금반지에 걸려 나와 같이 있던 낚시꾼들의 비웃음을 샀던 아픈(?) 기억이 있다”며 “얼마나 창피하던지 지금도 그때가 생생하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서 서고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사고를 항상 경계하는 기자이고 싶다”는 김형곤 기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기자가 있다면, 혹은 오랜만에 짜릿한 손맛을 보고 싶은 기자가 있다면 그에게 낚시 한번 같이 가자고 청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