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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만 한' 조선 광우병 보도

[기고]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2010.05.24 10: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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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속담이 있다. 심리학 용어로는 ‘자기 합리화’라고 한다. 적당하면 자아방어 기제가 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과하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기다 남에게도, 자기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어느 정도 ‘아전인수’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촛불주역들의 인터뷰를 왜곡하다 호된 역풍을 맞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적당한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발언한 대로 적었을 뿐인데 전체 발언을 안 적었다고 왜곡이라니 말이 되느냐”고 항변한다. 국내 최대 발행 부수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신문사에 ‘왜곡’이라는 말뜻을 설명해줘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조선일보가 ‘어떤 사실이 틀렸는지 지적해달라”(5월20일자)고 물어왔으니 대답은 해줘야 되겠다.



지난 12일자 조선일보는 ‘광우병으로 한국기자상, 경향신문 K기자’라는 인터뷰 기사 도입부에 ‘K기자는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에 매년 광우병 감염소 4~7마리가 있다는 기사로 광우병 공포론을 선도했다”고 적고 있다. 



C기자가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제일 처음 물어온 것도 ‘광우병 4~7마리 감염 추정’기사였다. 나는 ‘미 연방관보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알려줬고 설마 이를 광우병 괴담 수준으로 격하시킬 것으로 상상도 못했다. 조선일보 기준에서 미 연방관보를 토대로 기사화한 것도 광우병 공포론을 선도한 것이라면 도대체 뭘 근거로 기사를 써야 선동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소 한해 40만 마리 광우병 유사증세 보여’(2008년5월7일자)도 조선일보에 광우병 관련 칼럼을 기고한 서울대 이영순 교수의 정책연구용역 논문이라는 사실을 C기자에게 설명해줬다. 그러나 C기자는 정책용역논문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는지 이 기사도 2년 전 무책임하게 광우병 공포를 확산시킨 주요 보도에 포함시켰다.



조선일보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미국의 강화된 동물사료금지조치도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설명했지만 인터뷰에는 이 모든 설명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결국 ‘광우병 공포를 선도한 K기자’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 인터뷰는 ‘K기자가 광우병 파동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연수를 가 1년간 쇠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다’는 내용만 달랑 담겼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앞뒤 생략하고 짜깁기한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려는 의미가 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설마 조선일보가 K기자의 ‘소신’을 강조하기 위해 그 귀한 지면을 할애했을까.



조선일보는 20일자 ‘본지 비난 나선 광우병 선동 주역들’에서 또다시 경향신문 K기자를 들먹였다. K기자가 2008년 ‘광우병 소 한마리를 먹으면 5만5000여 명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고 광우병 공포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기사는 미 농무부 감사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라고 바로 하루 전날 경향신문 28면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광우병 대재앙’ 운운했던 주역들이 광우병 공포를 불러일으킨 2년 전 괴담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5월20일자)고 적고 있다.



경향신문은 인터뷰를 요청해온 C기자에게 30분 넘게 광우병 ‘괴담’이 ‘괴담’이 아니라 여전히 현존하는 위험임을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고 다시 신문지면을 한 면 가까이 털어 광우병의 위험을 설명했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는 ‘아전인수’가 문제가 아니라 기자들의 ‘난독증’이나 ‘편집증’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할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신문’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