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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택 전 연합뉴스 기자(5·18 당시 전남매일신문 소속)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촬영한 사진. 계엄군이 한 광주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있다. (나경택 전 연합뉴스 기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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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취재했던 기자들은 5·18 30주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르다.
보도하지 못했던 5·18 관련 사진을 1987년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의에 제공해 익명의 사진집으로 출간, 진상 규명에 큰 역할을 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기자는 “아직도 광주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언론이 발포명령자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택 전 기자는 첫 발포가 이뤄진 도청 앞 현장에 있었다. 21일 오후 1시가 가까워올 무렵, 시민에 밀린 군인들 사이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포명령 어떻게 됐나.” “아직 안 떨어졌습니다.”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와 통신병 간의 대화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통신병은 “발포 명령입니다”라고 말했다. 군인들은 일제히 사격했고 시민들은 쓰러져갔다.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발포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명령을 내린 사람이 있는데 아직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또 제가 찍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사람이 있습니다. 밝혀야 할 진실이 많습니다.”
5·18 당시 이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취재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시민과 군 모두에게 배척당했다는 점이었다. 군은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시민들은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며 기자들을 적대시했다. 기자 신분을 숨기고 취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19일 이후 현지에는 취재기자도 거의 없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현장 취재를 했던 김녕만 전 동아일보 기자는 “개인 의사와는 무관했지만 취재를 해놓고도 계엄이라는 서슬 퍼런 상황 때문에 보도가 나가지 못했다는 점은 지금까지도 치욕스럽다”며 “언론자유가 있었다면 광주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녕만 전 기자는 “후배 기자들이 선배의 아픈 기억을 통해 더욱 확고한 언론관을 갖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5·18 당시 보도통제에 항의해 제작거부를 벌이다 구속됐던 이경일 전 경향신문 기자(한성대 초빙교수)는 “일부지만 아직도 회사와 정권의 뜻대로 왜곡된 보도를 하는 경우가 남아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