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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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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만 MBC 부사장의 최근 이력은 독특하다. 울산MBC 사장을 지내던 그는 지난 2월 MBC 이사 겸 보도본부장에 선임됐다가 특임이사를 거쳐 보도와 제작을 총괄하는 부사장에 임명됐다. 그의 이름 앞이나 뒤에 붙는 수사가 2~3개월 사이에 네 차례나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MBC 안팎에서 황희만이라는 이름이 회자된 것은 올해 1월쯤. 지난해 12월 MBC 임원진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뒤 공석이었던 후임 보도본부장 등을 놓고 당시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엄기영 사장 간 ‘파워게임’이 정점을 치닫고 있었던 때다. 황희만 씨는 김 이사장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엄 사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이사장은 황씨와 윤 혁 전 부국장을 보도본부장과 TV제작본부장으로 선임했고, 이에 반발해 엄 사장이 사퇴하면서 MBC는 격랑에 휩싸였다. 보도본부장 선임 배경을 놓고 의혹도 나왔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황씨가 집사로 활동하고 있는 교회의 목사가 청와대에 인사를 요청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이 이근행 노조위원장과 단독으로 만난 며칠 뒤 그는 보도본부장 보직을 내놓고 특임이사로 물러났다. 노조의 출근저지에 막혀 보도본부장 자리에 제대로 앉아보지 못했던 그는 말없이 짐을 꾸렸다. ‘개인 능력은 출중한데 시절을 잘못 만났다’, ‘애초부터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교차했다.
그런 그가 한 달도 안돼 전면에 섰다. 김 사장이 노조와의 합의로 보도본부장에서 물러나게 한 그를 보도·제작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그의 부사장 임명은 MBC를 총파업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고, 그 소용돌이는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의도했든, 안했든 엄 전 사장을 사퇴시켰던 그는 이번엔 파업을 촉발한 주역이 되어 MBC를 ‘백척간두’로 내몰고 있다.
김 사장은 노조 집행부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고,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 40여 명은 곡기를 끊고 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파업, MBC에 공권력이 투입돼 노조 집행부가 구속되고 수백 명의 노조원이 연행되면서 파국으로 끝났던 1992년 ‘52일 파업’의 그림자가 18년 만에 다시 배회하고 있다.
김 사장에 대한 MBC 구성원들의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국장·부장급 간부들이나 기자들이 사태 해법의 하나로 제시했던 김우룡 전 이사장 고소도 요원하다. 황 부사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의 희생은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감내하기 힘들고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MBC에서 청춘을 보내고 영광을 누렸던 황 부사장은 자신을 던짐으로써 MBC를 지켜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