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시사만화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신문은 죽고 시사만화만 살아남은 것이다.”
현장 시사만화가들이 신문의 신뢰 추락을 지적하며 신문의 자본·정치권력에 대한 순치가 결국 신문지면에서 시사만화의 실종을 불렀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최문순 의원실 주최로 열린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 탄생 10주년 기념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노컷뉴스 권범철 화백은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신문은 더 노골적으로 자본권력에 빌붙었고 정치권력과 결탁했다”며 “재개발 시행사의 수 천 만 원짜리 광고가 저기서 손짓하는데 철거민은 어떻게 하느냐고 풍자·비판하는 시사만화가가 좋을 리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말 잘 듣고, 눈치 빠른 시사만화가가 아니라면 없는 것이 편해져 버렸다”며 “그 와중에 어떤 시사만화가는 못 해 먹겠다며 박차고 나왔고, 또 다른 이는 쫓겨났다.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 화백의 말대로 시사만화가들은 꼬장꼬장한 기개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해 왔지만, 자본·정치권력과 타협하는 신문사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겨져 왔던 게 사실이다.
신문사에서 시사만화 분야에 결원이 생기면 충원이 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동아일보는 이홍우 화백과 손문상 화백이 2008년과 2002년 각각 퇴사한 이후 만평이 자취를 감췄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김상택 화백이 작고한 후 미술부 기자들이 교대로 만평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와 세계일보도 이재용, 조민성 화백이 편집권 독립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퇴사한 이후 시사만화가를 충원하지 않고 있다.
권 화백은 이에 대해 “편집국에서 가장 힘없는 부서는 교열, 사진, 미술, 편집 등 인원이 적은 부서”라며 “취재부서에서 한명 결원이 생기면 다음날 신문을 못 만들 것처럼 오버를 해서라도 인원을 충당하지만 나머지 부서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시사만화는 신문을 떠났거나 떠나고 있다”며 “돌아보면 회한이 남지만 신문이 시사만화를 가질 자격이 없으니 함께 하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사만화가 서식할 수 있는 신문은 특별한 곳이 아니다”며 “대중으로부터 신뢰받는 상식적인 신문인 것”이라고 질타했다.
시사만화가 가장 빛나는 곳은 독자 신뢰가 높은 신문이며, 지금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권 화백은 “시사만화의 위상은 그 사회가 가진 건강성의 척도”라며 “우리가 시사만화를 가질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 그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국민일보 전정희 인터넷 뉴스 부장은 “프레임 탈출과 연예·가정 분야 등 소재의 다양화,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방식을 찾았으면 한다”며 “정치·경제 환경이 어려워 진 만큼 시사만화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정 부분 타협할 필요가 있다. 늙은 소나무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문상 프레시안 화백은 이에 대해 “시사만화를 그린 그 순간부터 만화를 재미있고 가벼운 것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궁극적으로 소재의 다양성을 얘기하는 것은 비판의 긴장감을 내려놓고 학습만화를 하라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 재직시절인 2001년 난곡에 혹한이 왔을 때 그건 그저 겨울 추위가 아니라 전기·가스·연탄 등 모든 생필품이 끊긴 사회재난이었다”며 “그런 이웃들의 심정을 만평으로 그렸더니 ‘이런 식으로 궁상을 떨면 루이비통, 베르사체 광고가 들어오느냐. 생각을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고 술회했다.
손 화백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누리려면 적어도 내 경우처럼 6개 이상의 직장을 옮겨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시사만화의 탓인가”라며 “문제는 다시 풍자와 비판”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최문순·김부겸 의원 등은 신문법 등에 스크린 쿼터처럼 시사만화를 지원하는 법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