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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부정선거 의혹을 특종보도한 동아일보 1960년 2월29일자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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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의 원동력은 언론이었다. 4·19는 ‘언론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
4·19혁명 50주년을 기념해 관훈클럽(총무 김진국) 주최로 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19혁명과 언론’ 세미나에서 4·19혁명의 배경에는 언론의 치열한 권력 비판 보도가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에 나선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이승만의 무리한 장기집권, 전쟁의 후유증, 권력의 부패, 사회적 비리의 만연, 선거부정, 권력과 언론의 갈등 같은 여러 요소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며 “여러 요인 가운데서도 자유당정권을 용기있게 비판하고 선거부정을 감시했던 언론과 야당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 중에서도 동아일보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4·19 때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조용중 전 연합통신 사장은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경찰의 부정선거 지령이 1960년 2월29일자 동아일보 특종보도를 통해 처음 신문에 등장했다”며 “당시 동아일보의 폭로가 있은 뒤 다른 신문들도 다퉈 날마다 경찰의 부정선거 지령을 보도해서 가히 집중포화라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고 말했다.
정진석 교수는 60년 3월 17일자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최석채 논설위원의 사설 ‘호헌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는 4·19혁명의 기폭제로 된 논설이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정당운동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박차고 나서라”는 내용이었다.
가톨릭을 배경으로 한 경향신문도 3·15 전 폐간되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야당지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또한 4·19혁명을 통해 사진보도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됐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최인진 사진역사연구소장(전 동아일보 사진부장)은 “4·19혁명의 신문사진은 눈으로 보는 뉴스시대의 개막을 알렸다”며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체 사진이나 4월18일 서울 청계천 천일백화점 앞의 고려대생 피습 사진, 학생들의 경무대 돌진 현장 사진 등은 현장의 사실성을 통해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