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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새롭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세요"

故고일욱 MBC 국제부 차장 추도사

최장원 MBC 보도제작국 기자  2010.03.24 14: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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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뒤늦은 일이 돼 버렸지만 우리가 기다렸던 건 오늘 이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선배가 결코 녹록지 않은 병마와 싸우실 때도 언젠가는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나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가을, 선배는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몇 동료들과 함께 선배를 찾아 뵙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들의 걱정은 공연한 것이 되곤 했습니다.
선배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고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선배의 집을 찾아 갔을 때도 선배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소망은 끝내 우리 모두를 남겨 놓고 황망히 떠나가 버렸습니다.

15년 전 선배가 경력기자로 MBC와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  저도 막 수습을 끝낸 초년 시절이었습니다. 선배는 경기 북부 지역을 담당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사회부 기자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현장에서 선배는 늘 의욕과 열정에 차 있었습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사람들의 설렘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겸손했습니다. 방송 리포트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며 후배들과 머리를 맞대기도 했습니다.

그 뒤 오랫동안 경제부 기자를 하면서 선배는 전문성과 무게 있는 안목을 보여주셨습니다. IMF사태가 터진 뒤, 상황은 혼란스러웠고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선배는 치열한 현장에서 그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상황을 누구보다 쉬운 언어로 풀어 나갔습니다. 경제부 막내로 하루하루가 숨가쁘기만 했던 저에게 선배의 자리는 언제나 크고 높아 보였습니다.

선배의 파리 특파원 시절은 제가 가장 가까이에서 선배와 함께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저의 가족들에겐 이국에서의 낯선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낯설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우리 곁에는 선배와 형수, 듬직한 아들 현수와 딸 해람이가 있었습니다. 저를 만날 때면 어린 두 딸에게 갖다 주라며 언제나 저의 빈손을 채워 주셨습니다. 명절 때가 되면 그래도 명절은 같이 지내야 한다고, 늘 우리 가족을 집으로 불러 부족함이 없는 식사를 차려 주셨습니다. 

제 아내는 아직도 영정 속에 있는 선배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저 안에 있느냐고….

선배가 살다간 이승에서의 삶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 고통은 남아 있는 이들의 가슴에 작은 상처가 되버렸습니다. 선배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면서, 끝내 마음을 놓지 못했을 남은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어린 두 자녀를 남기고 떠나는 아비의 마지막 심정을 헤아리는 일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 됐습니다.

고일욱 선배, 이제 편안히 쉬세요. 육신의 고통이 폭풍처럼 왔다간 그 자리에서 자유를 누리세요. 새롭고 영원한 자유를.
<최장원 MBC 보도제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