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개척하면서 제주를 기록하고 있는 한라일보 사진부 기자들. 오른쪽부터 강경민·이승철 기자, 강희만 팀장. |
|
| |
유럽 최고봉 ‘엘브러스’ 등정 기염
제주 세계자연유산 등재 보람도<한라일보 사진부>
강희만 팀장, 이승철 기자, 강경민 기자“자료사진 많이 남겨줘야 하니까 최대한 많이 찍어둬라.” 현장으로 나가는 후배 사진기자들에게 매일같이 강희만 팀장이 건네는 한마디다. 취재지시에 따라 장비를 챙기고 촬영 장면을 정하느라 강희만 팀장과 강경민·이승철 기자 등 사진부의 아침은 항상 바쁘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강희만 팀장의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오는 6월2일 지방선거에는 도지사와 교육감 도의원·교육의원 선거 등이 예정돼 있어 3명의 사진기자로는 밀착취재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올해 제주도사진기자협회장에 취임해 날로 약해져만 가는 사진기자의 위상을 어떻게 올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강 팀장은 “우리 후배들은 걱정하지 않는다”며 “저마다 전문분야의 자기 영역을 개척해 나아가고 있는 만큼 결실도 클 것”이라고 후배들의 자랑을 늘어놨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힘들게 산을 오르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혹은 “그냥 산이 좋아서….” 하지만 이승철 기자는 달랐다. 건강을 위해서였다. 어느 날 사진부 팀장에게 한라산 관련 취재는 자신을 보내달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술자리 등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때부터 힘겹게 산을 올라야하는 행사현장이나 날씨 관련 취재는 이 기자의 몫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정도의 등반횟수로는 건강을 지키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끊을 수 없는 술자리는 이어졌다. 얼마 후 한라산 등산학교에서 유럽 최고봉의 엘브러스산(러시아·5642m) 등정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자신도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를 회사에 피력했다.
회사 동료들마다 “너의 저질체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이 기자는 결국 남모르는 훈련을 바탕으로 2006년 7월17일 엘브러스 정상에 섰다. 하지만 이후 이 기자를 산에서 봤다는 이는 없다. 엘브러스 등정 이후 일제전적지 탐사팀에 속해 ‘산’이 아닌 ‘굴’로 가야 했다. 이렇게 이 기자는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갱도를 5년째 카메라 앵글에 담고 있다.
2001년 입사한 강경민 기자는 입사 때부터 굵직한 기획팀에 참여해 왔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한 한라산 학술대탐사 1부 ‘생명의 원류/하천과 계곡’ 탐사에 수습이 끝나자마자 참여해 한라산의 계곡을 누비고 다녔다.
이후에는 2003년부터 1년7개월간 진행된 한라산 학술대탐사 2부 ‘한라대맥을 찾아서’의 사진기록을 맡아 제주의 동서에 걸쳐 있는 오름군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라산과 오름의 기를 받아서일까. 그는 황금돼지해가 시작되는 2007년 새해 첫날 첫딸을 얻으면서 ‘취재원’이 되기도 했다.
같은 해 6월27일에는 제주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뉴질랜드의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취재 중이었던 순간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을 접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렇게 강 기자는 팀장인 강시영기자와 함께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0회·‘세계자연유산 3년의 기록’)을 수상했다.
사진부 팀장을 맡고 있는 강희만 기자는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는 베테랑 기자다. 2002년에 개인사정으로 잠시 떠났던 회사로 돌아온 강 팀장은 4년간의 노조위원장, 제주도카메라기자협회장, 제주도사진기자협회장 등의 직책을 맡으면서 자신보다는 동료들을 위해 고생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손을 놓을 수 없던 일이 제주의 야생동물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강 팀장의 전문분야는 새. 제주에 살고 있는 철새와 여름과 겨울을 나기 위해 제주를 찾아오는 철새의 생태를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강희만의 새이야기’를 연재했고 ‘제주철새천국,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기획으로 대만 등 해외취재도 불사해왔다.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깝다”는 강 팀장은 후배 사진기자들에게 “사진 한 컷 한 컷이 소중한 기록으로 남는다”며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찾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라일보 사회부 김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