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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김연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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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 MBC 법조팀은 짤막한 제보 하나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촛불집회 사건들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 줘 형사 단독판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 단 한 문장의 제보에서 취재가 시작됐다.
그러나 벽은 두꺼웠다. 법원 내부의 누구도 금시초문이라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수많은 제보들처럼 그 제보 역시 확인불가, 취재보류로 묻힐 것만 같았다.
첫 실타래는 넉 달 뒤 술자리에서 풀렸다. 2009년 2월 초 용산참사 사건 취재로 한창 달아올랐던 법조 기자실은 법원, 검찰의 인사철을 맞아 모처럼 숨을 돌리고 있었다. 법원을 출입하던 이정은 기자는 곧 서울을 떠날 예정이던 판사 한 명과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판사는 입을 열었다. “이제 떠나게 됐으니 말하죠. 작년 가을에 이 기자가 물어 봤던 거 있죠? 그거 다 사실이에요.”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다. 이정은 기자가 서울중앙지법의 형사단독 판사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다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건의 전말을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수백 개의 퍼즐조각을 맞추듯 고독한 팩트 싸움이 이어졌다. 법조팀은 ‘배당이 공정한 재판의 시작’이라는 독일 법학 교과서를 뒤졌고, 이미 법원을 떠난 전직 법관과 법학자들에게 수많은 자문을 구했다.
팩트와 팩트 사이에 끊어진 고리들은 상상력으로 메워 갔다. 그러기를 3주. 이 지리한 작업 끝에 법원 내부에서 어떤 은밀한 사건이 벌어졌는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국사건에 대한 몰아주기 배당은 군사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그렇게 드러난 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2월23일 첫 보도 이후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갔다. 속보가 계속해서 쏟아졌고 신영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공개됐다. 대법원은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해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 개입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신영철 대법관은 면죄부를 받았다. 일선 판사들이 연이어 판사회의를 소집해 반발했지만, 신 대법관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대법원은 배당 예규는 물론 법원 내부의 관료화, 근무평정, 인사권 전반에 대해 개선을 약속했다.
이 특종기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판사의 판결에 대해 이념공세와 인신공격, 심지어 계란투척까지 벌어진 2010년. 왜 우리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이 아니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는지 다시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