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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달째 공석인 MBC 본부장 인사를 위해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엄기영 사장이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엄사장은 이날 오전 사퇴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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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0시50분께, 엄기영 MBC 사장은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14층 컨퍼런스룸 한쪽에 자리한 흡연실에서 뒷짐을 진 채 창문 밖을 응시했다. 당시 방문진 여당 쪽 이사들은 같은 층 프레스룸에서 김우룡 이사장이 추천한 황희만 울산MBC 사장과 윤혁 부국장을 이사로 선임하는 투표를 벌이고 있었다.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엄 사장은 결국 그의 뜻에 반하는 이사들이 추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방문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뭘하라는 건지…저는 문화방송 사장을 사퇴하겠다. 할 얘기가 많지만 여기서 접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굳은 표정으로 호텔을 떠났다.
서울 여의도 MBC 본사로 돌아온 엄 사장은 비서실 직원을 통해 방문진에 사표를 제출한 뒤 컴퓨터를 켰고, 사장 재임 2년을 합해 36년간 생사고락을 나눈 MBC를 떠나는 소회를 담은 글을 써내려갔다. A4용지 1장 분량의 글은 회사를 떠나기 직전에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졌다.
그는 먼저 사장직을 내놓은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죄를 구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책임 경영의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MBC 위상을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좋은 방송 만들고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 공영방송 MBC를 계속 지켜달라는 것이 물러가는 선배의 염치없는 부탁”이라고 밝혔다.
엄 사장은 이날 오후 4시20분쯤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마지막 퇴근길, 조합원 30여명은 낙하산 이사 출근 저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노조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이근행 노조위원장의 손을 굳게 잡고 “건강한 MBC를 지켜내십시오”라고 했다. 노조원들과 악수를 끝낸 그는 머리 위로 팔을 올려 하트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MBC는 선배들이 지켜온 최고의 공영방송사입니다. 위기는 있지만 극복할 수 있는 위기입니다. MBC를 지키는 데 여러분이 힘을 다해주십시오”라고 말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MBC 파이팅”을 외쳤다. 노조원들은 “MBC 사수하여 MBC를 지켜내자”라고 연호했다. 엄 사장은 대기한 차량에 올라타며 “수고하십시오”라고 짧게 말했다. 그를 태운 차량은 미끄러지듯 회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