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박수택 기자 사태로 본 사라져야 할 언론계 관행우리나라에는 왜 현장에서 뛰는 노장 기자들이 드물까.
SBS가 지난 1일 박수택(52) 환경전문기자를 논설위원실로 발령하며 ‘보도국장보다 연차가 높다’는 이유를 내세우자 언론계에선 보복인사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같은 ‘구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수택 기자의 경우 현장에 남고 싶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사측이 연차가 높다는 이유만을 반복하고 있어서다.
노조가 촌철살인했다. “보도국이 검찰조직도 아닌데 후배가 책임자가 된다고 선배들을 보도국에 둘 수 없다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려운 궤변이다.”
SBS가 내세운 언론계의 이런 관행은 비일비재하다. 후배가 편집·보도국장이나 부장이 되면 승진에서 밀린 선배들은 타국으로 전출되거나 스스로 옷을 벗는 일이 잦다. 기자의 생명이 ‘현장’이 아니라 ‘승진’이나 ‘연공서열’에 달려 있는 것이다.
미국 백악관을 49년째 출입하고 있는 헬렌 토머스 기자의 나이는 90세. 이밖에도 해외 언론엔 노장들이 수두룩하다.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출신 김웅철 기자에 따르면 일본 언론인의 연령도 한국보다 10년 이상 높다.
그러나 한국의 취재현장에서는 백발성성한 기자들을 찾아볼 수 없다. 40대 중반만 돼도 자의 반 타의 반 현장을 떠나는 실정이다.
이진곤 국민일보 고문은 이에 대해 “우리 언론은 경영진과 기자 모두 지위 지향적이고 계급사회적인 인식이 강해 보인다”며 “승진이 안 되면 기자생명도 끝이라 일종의 조로현상마저 나타난다”고 평했다.
유럽 언론들은 노장들의 취재 노하우나 경력을 높이 평가해준다는 것. 또 기자들도 데스크나 간부 등 관리직을 맡는 걸 싫어하고 현장에서 평기자로 뛰길 원한다는 말도 전했다. 오히려 데스크는 40대 젊은 기자들이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 언론들은 고참기자들의 노하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질을 향상시킬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YTN의 한 부장급 기자는 “경력이 쌓일수록 정부 고위간부나 정책 결정권자 등 정보 접근이 용이해 수준 높은 기사를 생산할 수 있다”며 “전문기자나 선임기자 등 연차 높은 기자들이 일선 취재현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참·선임급 기자들이 ‘보직 부장’에 소위 밀렸다는 인식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면 할애나 출입처 보장도 되지 않는다. 이 역시도 ‘계급사회’라는 인식 틀에서 일어나는 구시대적인 사고들이다.
최근 들어 이런 관행과 관습들을 깨고 있는 언론사들도 상당하다. 2004년 가장 먼저 선임기자 제도를 실시한 한겨레에는 편집국장보다 연차가 높은 선임기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민일보에도 편집국장을 지냈던 이강렬 국장급 기자가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앙일보에서도 최근 부장급 기자가 평기자로 돌아갔다. 연합뉴스에서는 장용훈 북한전문기자 등에게 본인이 원하는 한 현장 전문기자로 정년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일보의 한 기자는 “아무리 고참 기자라도 현장에서 뛰고 싶은 욕망이 있고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며 “인사 적체에 따른 궁여지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언론사의 배려와 기자사회의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한겨레 문현숙 인사교육담당 부국장은 “콘텐츠 경험이 많은 선임급 기자들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도가 높아 보인다”며 “출입기자들이 쓰는 것 이상의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SBS 박수택 기자는 언론인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플랫폼에서 경영·관리 능력을 발휘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끝까지 뛰는 것이다. 그는 후자를 원한다고 했다. SBS의 행보가 언론계에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