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기자의 아침 출입처 기자실에 도착했다. 노트북을 켰다. 어차피 부팅하는 데 평균 10분은 걸린다. 우선 나가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다른 회사 후배와 마주쳐서 잠깐 수다를 떨었다.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한 통화 했다. 지금쯤은 부팅이 끝났겠지. 그러나 책상 위 노트북은 아직도 느긋하게 부팅 중이다. 내 머리도 부팅이 안 되는 것 같다.
#2. 대답 없는 노트북 불길한 예감이 든다. 출입처 대변인이 하필 마감 직전 브리핑을 하겠단다. 내 노트북은 전과 수십범이다. 아무튼 번개같이 받아치고 ‘야마’ 뽑고 초고속으로 기사를 썼다. 전송 버튼 꾸욱….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 노트북이란 친구, 전신마비 발작을 또 일으켰다. 먹통이 돼버린 노트북은 말을 잊었고 휴대폰은 울어댄다.
말썽장이 ‘왕짜증’ 노트북 때문에 기자들의 업무 의욕이 반감되고 있다.
기사 작성 중에 시스템이 다운되는 현상은 다반사. 배터리에 콘센트, 가방 무게까지 더하면 3~4㎏에 달하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 젊은 기자라도 버티기 힘들다. 특히 이동이 잦은 사회부 현장 기자들이나 여기자들의 고충이 크다.
배터리의 수명이 다된 경우도 골칫거리다. 한 신문사의 기자는 “배터리 충전 시간이 짧아 기자회견장이나 토론회 등에 가면 콘센트를 찾느라 전전긍긍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회사의 노트북 교체가 더디고 수리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노트북의 수명은 보통 3년. SK텔레콤 등 주요 대기업들은 3년에 한 번씩 직원들의 노트북을 교체해주고 있다.
대부분 언론사의 경우도 3~4년이 교체 기한이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 중앙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4년에 한 번씩 교체하다가 지난해 5년으로 바꿨을 정도다. 이 방송사의 한 기자는 “비용 절감 차원이라는 게 이유였는데 기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서울 세종로 청사 한 기자실에서는 “이 방송사 2진 기자 노트북이 출입기자들 중에 제일 크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리는 보통 각 언론사 기술담당 부서에서 맡고 있으나 인원 부족 등으로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노트북을 구매하지 않고 대여업체를 통해 빌려 지급하는 일부 언론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애프터서비스가 까다로워 기자들의 고충이 심각하다.
이 때문에 아예 자비로 노트북을 구입하는 기자들도 늘고 있다. 한 방송사 기자는 “회사에서 지급한 기종은 너무 무거워 노트북을 따로 샀다”며 “넷북의 경우 시중가가 60만~70만원 정도로 비교적 부담이 덜한 편이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직접 구매하는 기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최근 신기종 노트북 시연회를 여는 등 2003~2006년에 지급한 노트북을 한꺼번에 교체하기로 했다. 중앙일보도 노조의 문제제기에 따라 지급된 지 3년 이상 된 노트북을 지난해 말까지 일괄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