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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삶을 소중히 여겼던 선배

SBS 故이은종 부장 추도사

한승희 SBS 보도국 정치부 기자  2009.12.16 15: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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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종 선배를 떠올리려니 나의 지난 과오를 들추지 않을 수 없다.
편집부에서 PD로 아침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워싱턴 특파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속보가 들어왔으니 ‘전화 라이브’로 가자는 다급한 목소리.

뉴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특파원 전화 음성과 함께 내보내야 할 화면 편집은 안 돼 있고 “워싱턴 리포트 오디오 내리고 밑그림으로 깔겠습니다!” 그런데 리포트 말미에 ‘기자 스탠딩’이 있었고, 결국 방송되는 기사내용과 다르게 특파원이 입만 뻥긋거리는 방송사고가 나고 말았다.

뉴스가 끝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부장께 사고경위를 구구절절 보고하는데 “잘해보려다 그랬다는 거 아니야? 가서 앉아!” 이은종 당시 편집부장은 특유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짧게 말씀하셨다.

그동안 방송사고가 나면 경위를 따져 책임자를 가리느라 마음에 상처가 되고 짐이 되고 했었는데, 그날 부장의 반응은 나에게 스스로 자성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커다란 몸집에 대비돼 늘 손에 들고 다니시던 책은 작아 보였다. 기사가 부실하다거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 마뜩지 않을 때는 버럭 소리도 지르셨지만, 개개인을 비난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이 선배는 우리의 ‘기자’라는 이름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을 다지고 다지면서도 마음에 담은 말을 굳이 폭포처럼 쏟아 놓으려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뵙게 된 지 10여 년이 돼가는 이제야, 그 진심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고 소중한 선배로 여기게 되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너무나 황망히 가버리셔서 원망스럽기까지 하고 후회의 눈물이 때 없이 차오르지만, 아마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이 선배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지난 4월 어느 날, 이은종 선배가 ‘미소라 히바리’라는 일본가수의 노랫말과 함께 블로그에 남기신 글을 나누고 싶다.

“자기가 선택한 길 좁고도 긴 그 길에는 울퉁불퉁한 길, 굽은 길도 있고 지도조차 없는 길이지만 눈이 녹기를 기다리며 푸른 냇물 소리를 들으며 강물의 흐름처럼 평온하게 이 몸을 맡기고 싶은 마음으로 언젠가 찾아올 개는 날을 기다리는 게 인생이다.…어느 분야이건 최고의 경지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고 하지요.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택한 길인 만큼 끝까지 길을 헤쳐 나가야겠습니다.”

이은종 SBS 보도국 특임부장이 8일 오전 별세했다.
고인은 1986년 MBC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1991년부터 SBS에서 일했다. 선거방송기획팀장, 보도본부 인터넷부장, 편집2부장, 특임부장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