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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 엄기영…MBC 개혁 '승부수'

사퇴요구 거부하면서 방문진 문제제기 인정

김성후 기자  2009.09.02 14: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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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기영 MBC사장(뉴시스)  
 
정연주 전 KBS 사장 “의연하게 버티시라”


방송문화진흥회 일부 이사들이 MBC 경영진에 대한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임기를 1년6개월여 남긴 엄기영 사장이 속내의 일단을 내비치면서 방송계가 달아오르고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지난달 31일 엄 사장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칼럼에서 “포크레인으로 당신을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티셔야 한다”고 주문했고, 같은 날 엄 사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지만, MBC의 독립성과 구성원들의 자존심, 공영방송의 수장이라는 책무를 느낀다”고 말해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엄 사장은 그러면서 “MBC에 근본적인 자기개혁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MBC 혁신 플랜’을 선포했다. 그는 공정성을 높이고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노사관계를 개선하고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의지를 밝혔다. 엄 사장은 “MBC의 미래를 위해서 노와 사,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전사적인 ‘미래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우룡 이사장은 “늘 하던 소리”라고 말했다. 차기환 이사는 “그런 말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난 1년6개월간 무책임한 경영행태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엄 사장의 MBC 혁신 발언과 무관하게 사퇴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최근 MBC 사장의 진퇴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면서 “새로 구성된 방문진 이사회가 그것까지 포함해서 MBC가 국민의 전파로서 합당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소신 있게 해 나가길 바란다”며 사퇴 압박에 나선 방문진을 거들었다.

중도사퇴를 일축한 엄 사장이 MBC 혁신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엄 사장이 방문진과 노동조합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시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MBC 한 관계자는 “사장이 당당하게 버티지 못하고 일부 이사들의 입맛에 맞게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엄 사장은 프로그램 공정성, 단체협약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방문진 이사들이 업무보고에서 문제제기한 사안들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정대 미디어행동 사무처장은 “엄 사장의 혁신안은 MBC에 대한 내부 진단과 고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방문진의 요구에 떠밀린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엄 사장이 방문진의 강압에 밀려 한걸음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벼랑 끝에 서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엄 사장의 발언에서 타협 의사를 확인한 방문진 이사들이 본부장 교체, 노조와의 관계 단절 등 엄 사장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장 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엄 사장에게 ‘충성맹세’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차기환 이사는 “사람이 안 달라져 있는데 신뢰가 얼마만큼 되겠나.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성우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엄기영 사장이 ‘미래위원회’ 카드를 내놨지만 타협보다는 무조건 밀어붙이는 정권 스타일로 볼 때 사퇴를 강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엄 사장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 사장의 발언과 관련해 MBC 노조는 “방송의 공정성·객관성과 관련된 제도적 논의가 이뤄진다면 이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취와 관련한 엄 사장 최근 발언>

“진퇴 여부는 내가 결정한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언론사 사장 퇴진을 어떻게 말하느냐.” (6월19일 임원회의)

“어느 정파 어느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가겠다” (8월3일 임원회의)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MBC의 독립성과 구성원들의 자존심, 공영방송의 수장이라는 책무를 느낀다.” (8월31일 확대간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