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말, 서울 여의도 KBS 본관 6층 사장실 옆 회의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는 정연주 KBS 사장과 만났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관례에 따라 언론사 예방에 나선 것. 통상 언론사 예방이 덕담에서 시작해 잘 부탁한다는 말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이날 예방 자리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고 내내 긴장감이 흘렀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이명박 후보는 배석한 측근에게 여당 경선이 시작됐냐고 물은 뒤 “방송 중계는 어떻게 할 예정이냐”며 형평성 문제를 꺼냈다. 이어 “경영진 방침이 잘 돼야 되는 것 아니에요? 야당은 피해의식이 있어요. 2002년 대선, 탄핵 때도 그렇고…. 피해를 입은 사람 입장에선 그래요. 정 사장도 유명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정 사장이 “KBS가 많이 바뀌었는데 밖에선 모르고 있다”고 답하자 이 후보는 “특정 프로그램의 기획이나 성향에 문제가 있다”고 맞받았다.
KBS 경영진 한 사람이 “이번 한나라당 경선은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에 이 후보는 “우리끼리 경선하는 것이야 그렇지만 여당하고 붙었을 때 공정해야지. 솔직히 야당끼리 하는 거야 둘 중 하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 아니에요? 부탁을 하는 겁니다. KBS는 정권교체 반대할 것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당시 두 사람이 나눴던 이 대화는 KBS 박성래 기자가 최근 발간한 책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베가북스)에 수록돼 있다. 박 기자는 당시 한나라당 1진 출입기자로 예방 현장에 배석했다.
그는 책에서 “예방 자리에서 그 흔한 덕담 몇 마디도 없이 이런 노골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는 무언가 분명한 의도가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마키아벨리 식으로 말하자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