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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투쟁 '네버엔딩 스토리'

YTN노조 '공정방송 사수' 그 1년의 기록

곽선미 기자  2009.07.22 14: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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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로 YTN 노조의 공정방송 사수 투쟁이 만 1년을 맞았다. 지난해 7월18일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에 나서며 본격적으로 ‘낙하산 반대·공정방송 사수 투쟁’을 벌였던 노조는 투쟁 2백59일째가 되던 지난 4월1일 노사 공동 합의문을 도출한 뒤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그러나 사태 1년이 지난 지금도 해직자 6명은 복직이 되지 않은 채 사측과 힘겨운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끝나되 끝나지 않은 그들의 투쟁,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30초 만에 끝난 주총이 도화선
YTN 노조의 공정방송 사수 투쟁은 지난해 7월17일 주주총회가 도화선이 됐다. 이날 주요 이사들은 용역직원 2백여 명이 단상을 에워싼 상태에서 주총을 열어 ‘구본홍 이사 선임안건’을 30여 초 만에 가결시켰다. 사원 주주인 노조는 회의장 입장은 물론 반대 의사 표명도 저지당했다. 결국 노조는 이튿날인 18일부터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돌입했다. 이로부터 10일 만에 박경석 전 노조위원장이 구본홍 사장과의 단독 협상을 통해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로 부결되고 박 위원장은 자진 사퇴했다.

총파업 가결…투쟁 본격화
첫 협상 실패의 부담을 안고 8월12일 출범한 노종면 지도부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끝장투표’ 카드를 들고 나왔다. 노 위원장은 사측과 공식 대화에 나섰으나 4차례의 협상 끝에 8월19일 결렬을 선언했다.
회사는 9월1일 조합원 24명에 대한 징계성 사원인사를 단행해 노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노조는 ‘인사 불복종 투쟁’을 전개하고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해 76.4%의 높은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회사는 8월9일·13일 업무방해 혐의로 조합원 12명을 고소했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가기 위한 단계적 투쟁에 나서며 ‘블랙투쟁’ 등 이색 투쟁을 선보였다.

6명 해고 등 33명 중징계
사측은 10월6일 6명 해고, 6명 정직 등 모두 33명을 중징계했다. 돌발영상 제작자 3명 중 2명이 해고와 정직에 처해지면서 10월8일 YTN의 간판 프로인 ‘돌발영상’이 중단됐다.
전·현직 언론인들이 30년 만에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등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 선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국제기자연맹(IFJ) 등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졌다.
‘YTN 국정감사’라고도 불린 10월9일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구 사장과 청와대 박선규 비서관의 지난 7월 초 회동이 사실로 확인됐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최시중 위원장과의 회동이 밝혀졌다.

재승인 보류 초강경 압박
사태가 악화되자 구 사장은 조직개편과 인사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구 사장은 11월19일 YTN의 자회사인 CU미디어의 상임고문으로 일하던 배석규씨를 전무이사로, 김사모 총무국장을 경영담당 상무이사로 각각 임명했다. 구 사장이 임명했던 강철원 보도국장 직무대행은 보도국원들의 성향 분석을 한 사실이 드러나 안팎의 비난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2월8일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낸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방통위는 12월11일 YTN에 대해 ‘재승인 보류’ 결정을 내렸다.

보도국장 임명 파문 등 대립
올해 1월 중순 벌어진 보도국장 임명 파문은 사태 해결을 더욱 힘들게 했다. 구 사장은 조합원 투표에서 1위로 뽑힌 김호성 후보 대신 2위인 정영근 후보를 임명해 사장실 점거 등 노조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회사는 대규모 법적 조치를 다시 단행했다. 1월23일 사측이 피고소자 12명 중 11명에 8명을 추가로 고소, 총 19명을 형사 고소했다. 결국 구 사장과 노조는 큰 마찰을 빚었으며 이는 노종면 위원장 구속의 빌미가 됐다.
이러던 중 2월24일 방통위는 ‘YTN 조건부 재승인’을 결정했다.

노조 총파업·위원장 구속
4개월 동안 총 8차례에 걸쳐 진행된 ‘임금 및 보충단체협상’이 3월5일 최종 결렬됨에 따라, 노조는 72%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가결했다. 노조는 임협 결렬에 따른 파업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측과 정부·여당은 정치적 목적을 띤 파업이라며 비판했다. 노조의 총파업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노종면 위원장,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 조승호 기자, 임장혁 기자가 자택에서 체포돼 사태가 극단으로 치달았다. 현 전 위원장, 조 기자, 임 기자는 2~3일 만에 석방됐으나 노 위원장은 구속 처리됐다. 노조 비대위 지도부는 29일 사측과 물밑 협상에 들어갔다.

4·1합의 도출…6명 해직 여전
노사는 4월1일 ‘고소 취하’와 ‘파업 철회’를 골자로 한 합의서를 도출했다. 같은 날 오전 노 위원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 적부 심사가 열렸으며 이날 오후 노 위원장은 석방됐다. 이로써 열하루간 이어졌던 YTN 노조의 첫 총파업과 2백59일 동안 벌어졌던 YTN 사태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7월22일 현재까지도 실질적인 사태 해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해직된 기자 6명은 여전히 복직되지 못한 채 사측과 지난한 법적 싸움을 하고 있다. 4·1 합의 당시 해직자 문제는 법원의 결정에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언론 투쟁사에서도 흔치 않은 기록
사실상 YTN 노조의 투쟁 역사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노조는 ‘사장추천위원회’ 심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26일 구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 지속 여부를 놓고 ‘사원 의견조사’를 벌여 2백78명 찬성(전체 4백83명 중 4백8명이 참석)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직후부터 기수별 연대 성명이 잇달아 발표되었고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의 본격적인 불씨가 지펴졌다.
YTN의 투쟁은 언론 노동 운동사에 있어서도 흔치 않은 기록으로 남겨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방송사 주요 투쟁 사례로는 2000년 CBS 노조 2백67일 파업(권호경 사장 퇴진 운동), 2003년 iTV 1백48일 투쟁(박상은 회장 퇴진), 1992년 MBC 노조 50일 파업(공정방송 쟁취), 1990년 KBS 노조 36일 제작거부(낙하산 사장 반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