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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6월1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언론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과 주요 언론단체장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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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 등 보수언론과 사사건건 대립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기자사회 적으로 돌려노무현 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그의 인생 역정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거침없는 비판은 언론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기에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언론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선 이후 첫 인터뷰를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와 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그만큼 기존 언론의 특권을 강하게 부정했고 그런 탓에 주류언론의 견제를 끈질기게 받았다. 특히 보수언론과는 임기 초반부터 사사건건 부닥치면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언론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언론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2007년 1월23일 신년연설에서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해 시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언론이 정치를 지배하려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민의 권력으로 돌아가고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언론을 개혁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취임 초 가판신문 구독 중단과 기자실 개방 및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으로 시작한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은 신문고시 개정,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제정, 신문법 및 언론중재법 개정 등 언론개혁 입법으로 이어졌다.
또한 언론보도에 대한 오보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 정책 홍보사이트인 ‘국정브리핑’을 신설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추진했다. 세간에 회자됐던 대통령의 댓글정치는 언론보도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컸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2003년 8월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한 동아·조선·중앙·한국일보 등 4개 신문사를 상대로 각각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보수언론, 취임날부터 비판 기사노 전 대통령과 보수언론의 대립은 2003년 2월25일 취임식 당일부터 시작됐다. 이날 동아일보는 ‘노, 당선 기여한 매체 외엔 부정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노무현식 언론개혁’, ‘이름만 바꾼 대북정책’ 등 4건의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후 보수언론은 행정수도 이전, 신문법,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부동산 대책 등 참여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신문법에 헌법소원을 내 무력화시키는가 하면 부동산정책의 경우 종합부동산세 부과를 ‘세금폭탄’으로 규정, 비판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륵’에 비유하고 ‘자기가 키운 괴물방송에 거꾸로 물린 정권’ ‘사이비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 ‘세금 테러’ ‘노이동풍(盧耳東風)’ ‘약탈 정부’ ‘도둑정치’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도 맞받아쳤다. 그는 2004년 7월 행정수도 이전 반대와 관련해 “지금 행정수도 반대여론이 모아지고 있는데 그것에 앞장서서 주도해 가고 있는 기관들을 보면 서울 한복판인 정부청사 앞에 거대한 빌딩을 가진 신문사가 아니냐”며 조선 동아일보 등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보수언론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공격은 2004년 12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 내정하면서 스스로 ‘정부와 언론의 건장한 긴장관계 정립’이라는 원칙을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언론시민단체는 “족벌신문의 사주를 주미대사로 내정한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와 중앙일보 사이의 밀월은 2005년 8월 ‘안기부 엑스파일’(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으로 홍 대사가 97년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한 혐의에 연루되면서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7년 1월 국무회의에서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서 기사 흐름을 주도하고 만들어 나가는 기자실의 실태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 증진정책’의 다양한 내용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출산비용 지원’ ‘대선용 정책’ 등으로 축소돼 보도됐다는 비판적 인식을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이후 국정홍보처는 같은 해 3월 ‘국내외 취재지원 시스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5월부터 브리핑룸 통폐합, 사무실 출입제한 등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밀어붙였다. 일선 기자들은 물론 대다수 언론이 반발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언론의 싸움’이 본격화됐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인과의 대화’를 통해 진정성을 알리려했으나 그의 눈높이는 기자들과 맞지 않았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은 “복잡한 인과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을 기자들은 쓸 수가 없다. 기자들이 오라면 안 가지만 PD들이 오라면 간다(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고 기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집권 후반기, 노 전 대통령의 이런 언론관은 언론 전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으면서 상대를 불필요하게 키우고 결속시켰다. 또한 언론개혁의 필요성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던 상당수 기자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였을까. 퇴임을 두 달 앞둔 2007년 12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송년 만찬 모임에서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시기는 불편한 시기였다. 말로는 건전한 긴장관계 하자고 했는데 우리가 완성하지 못했다. 직접 대면하면 이렇게 관계가 해소되는데 다른 관계에서 서로 한 발 무르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지난 일 잊고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언론관련 어록>“정치권력은 제 길 가겠으니 언론도 정치권력 탄생에 무엇인가 역할을 하려고 하거나 정부를 길들이겠다는 생각을 버려달라.” (2003년 4월7일 제47회 신문의날 기념식)
“일부 언론이 독재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그 대가로 이런저런 특권과 특혜를 누렸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 2월25일 국회 국정연설)
“언론이 대안을 말하는 언론, 보도에 책임을 지는 언론이 될 때까지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2007년 1월23일 신년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