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에 대한 보도가 연일 방송과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언론들의 인권 실종 보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언론들은 지난달 말부터 돼지 플루부터 신종 플루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인플루엔자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언론들의 취재 경쟁과 정부 당국의 미흡한 조처로 추정·의심환자들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돼 오보 기사가 양산됐다.
지난 1일 오후부터 언론들은 공항버스를 운전하는 인천지역 50대 남성이 신종 플루 추정환자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튿날 오전 이 남성은 ‘계절 플루’ 환자이며 ‘음성’인 것으로 판명됐다. 방송과 인터넷언론들은 급히 후속기사를 썼다. 그러나 신문들은 이를 오프라인 매체에 미처 반영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신종플루 길거리 활보하나(한국일보)’, ‘버스승객·접촉주민 수만명 신종플루 ‘노출’ 우려…버스운전 기사가 환자 ‘충격’ 신종 플루 유행 오나(경향신문)’ 등 자극적 제목과 내용이 담긴 추측성 보도가 이날 하루 동안 떠돌았다. 혼란이 가중되면서 KBS는 이미 오전 8시 해당 남성이 음성으로 판명됐다는 기사가 타사를 통해 보도됐음에도 해당 남성의 위험을 알리는 보도를 오전 9시 여전히 방송하는가 하면 국민일보는 경기도 안산에서 (일반) 버스를 운행해오던 남자라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부산MBC는 의심환자인 20대 여성의 신상을 밝혀 논란이 됐다.
대형 오보사태를 겪었으나 언론들의 자성은 별로 없었다. 한 기자가 자사 칼럼을 통해서 “버스를 이용한 다수의 승객에게 병을 옮겼을 수 있다는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고 이 남성은 인간에게 치명적 병을 옮기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꼬집었을 뿐이다. 언론들은 후속 보도에서 “50대 남성은 ‘음성’, ‘계절환자’로 판명됐다”는 문구를 넣기만 했다.
사태가 이렇게 번진 까닭은 우선 정부 당국의 미흡한 대처에 있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일 몇몇 기자들의 확인 취재에 인천지역 공항버스 운전기사인 50대 남성이 추정환자라는 내용을 밝혔다.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지자,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발로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 담긴 메일과 문자를 발송했다. 언론들은 그러나 구체적인 설명과 공식 브리핑이 없는 상태였기에 당초 계획대로 추정환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한 기자는 “보통 의심-추정-확진환자 순으로 분류되는데 추정환자의 경우 인플루엔자 A까지는 맞는 데다가 격리 수용됐기 때문에 위험인물로 봤다”면서 “정부 당국의 명확한 설명이 없고 보도 가이드라인 등이 정해져 있지도 않아 신상을 밝혔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가 불가피했다”며 “정부 당국의 대처가 미진했다”고 밝혔다.
언론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알권리라는 명분만으로 신상을 공개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방송사 한 기자는 “기자들의 취재 경쟁 때문에 인권이 철저히 무시됐다”며 “해당자는 자칫 범죄자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인데 신중한 보도 태도가 아쉬웠다. 생명을 다루는 일인 만큼 명확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