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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와 신경민, 이루지 못한 인터뷰

장우성 기자  2009.04.22 14: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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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와 신경민.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라스트신’은 어딘가 닮았다.

지난해 8월11일. 이명박 대통령이 KBS 이사회가 낸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에 서명한 날이었다. 사흘 전 공권력이 투입됐던 KBS는 분노와 흥분으로 가득했다. 작렬하던 태양이 식어갈 무렵, 담배연기 너머 사장실이 있는 본관 6층에 시선이 머물렀다. 지금 정 사장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순간 기자 본능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KBS를 떠나는 그의 마지막을 홀로 기록하고 싶었다. 이른바 ‘뻗치기’에 즉석에서 돌입한 셈이다. 그러나 새벽이 되도록 주차장에 그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은 지쳐갈 즈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정 사장의 번호를 눌렀다. 한번만 더 통화음이 거듭되면 그만 끊으려 할 때, 돌연 낮은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정연주인데요.” 정 사장이었다. 순간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정리할 것이 많아서 언제 나갈지 모릅니다. 이제 돌아가세요. 나중에 기회가 있겠죠.” 몇 번의 통화 뒤에 결국 마포대교를 건너는 동안에도 그 목소리는 한강의 물결처럼 메아리쳐왔다. 나중에 안 일지만 정 사장은 그날 아침 10시가 돼서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오후엔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는 아나운서의 코멘트가 들려왔다.

6개월이 지난 13일, 무대는 여의도 광장 건너 MBC로 바뀌었다. 오전 신 앵커 교체를 공표하는 엄기영 사장의 담화문이 발표됐다. 상황은 긴박해졌다. 전날 인터뷰를 요청해놓은 기자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신 앵커의 전화는 묵묵부답이었다. 기대 반, 체념 반이었다. 점심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돌연 휴대전화에 신경민이란 이름이 찍혔다. “미안하지만, 어렵겠습니다. 후배들이 제작거부를 하고 있는 마당에…” 3분여 짧은 통화였지만 여운은 진했다. “할 말은 많지만…”이라는 그의 말을 스크린 삼아 30년 기자생활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듯했다. 기자실에 앉아 그의 클로징 멘트를 지켜봤다. 그가 ‘자유’ ‘민주’ ‘희망’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산화하는 벚꽃 잎의 몸부림이 전해져왔다.

기자의 발은 뚜벅뚜벅, 본능처럼 방송센터 앞 출입 게이트로 향했다. 역시 그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한 시간여 짧은 ‘뻗치기’를 하던 끝에 신 앵커가 이미 동료들과 석별의 술자리에 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아쉬움보다는 그에게 마지막 밤만큼은 자유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건조한 목소리 뿐이었다. 속절없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튿날, 문자메시지가 새벽의 정적을 깨웠다.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입장을 이해하리라 믿고 다음을 기약합시다.” 다른 기자들에게도 다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왜일까. 세상이 멈춘 듯 잠시 휴대전화를 쥐고 한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권력의 외압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정연주와 신경민. 모든 공과를 떠나, 사장과 앵커라는 공인이기에 앞서 기자 대선배인 그들을 바라보는 왼쪽 가슴은 아렸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나 더 있었다. 두 사람에게 이날은 ‘클로징’이 아니라는 것. 1막은 내렸지만 2막의 커튼은 곧 올라갈 것이다. 역사의 부름을 받고 돌아올 그날, 다시한번 인터뷰를 요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