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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하지만…

[르포] 대검찰청 기자들

민왕기 기자  2009.04.22 13: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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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법조기자들의 질문을 피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번은 거쳐야 할 부서…상당수 기자들 ‘자부심’


20일 밤 10시 대검찰청 기자실. 기자들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과 노건호씨의 소환에 따라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밤 11시께 노씨가 생각보다 일찍 귀가한 후에도 새벽까지 남아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대다수였다.

한 달째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체력은 거의 바닥이고 대부분 초췌한 몰골이다. 종합일간지의 한 기자는 “잠을 자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고 즐거움”이라며 “가끔 나도 모르게 쓰러져 곯아떨어질 땐 비애를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또 “새벽 2~3시를 넘겨 퇴근하는 것이 예사”라고 했다.

입에선 단내가 나고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일에 대한 강박은 노이로제 수준. 주말의 달콤한 휴식도 반납한 지 오래다. 봄이 왔지만 대검 기자실엔 봄볕이 들지 않았다.

기자실 앞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산더미처럼 수북하고, 기사가 안 되거나 사실 확인이 안돼 초조해진 기자들이 ‘웰빙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줄곧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주위가 자욱했다.

종합일간지의 한 기자는 “워낙 대형 이슈다 보니 매일 1면”이라며 “지면은 많은데 팩트 확인은 안 되고 기사 방향도 안 잡혀 답답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YTN의 한 기자도 “어제 모씨가 나한테 찾아와 ‘제가 모든 걸 다 털어놓을게요’라고 말하는 꿈을 꿨다. 순간 특종이다 싶었는데 깨어보니 꿈이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격무에 불만이 많을 듯도 한데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삭이기만 하는 것이 이곳 기자들이다. 기자로서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나도 생활인인데…”라는 자괴감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

종합일간지의 한 기자는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라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며 “개인적인 일이나 가족들에게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기자들은 이 때문에 법조 출입을 고3에 비유하기도 한다. 근무 횟수에 따라 ‘재수·삼수’라는 비애감 서린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유다.

치열함에서 비롯된 신경전도 뜨거워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도 있다. 17일 오전 기자실에서 만난 SBS의 한 기자는 각 사간의 불꽃 튀는 경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법조기자들의 노트북에는 대개 보안기가 달려 있다. 옆에서 화면을 봐도 보이지 않게 하는 장치다. 그것도 모자라 누가 다가가면 ‘Alt+Tab’키를 눌러버린다. 전화통화도 멀찌감치 밖에 나가서 한다. 한마디로 살벌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로 ‘물 먹이고 물 먹는 사이’인 법조기자들. 하지만 다른 출입처에 비해 끈끈한 연대감을 위안 삼고 있다. 또한 ‘진짜 기자’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19일 밤 10시 기자실에서 만난 한 경제신문 법조팀장은 “다른 출입처라면 서로 ‘소가 닭 보듯’ 하겠지만 이곳은 타사 후배들마저 모두 내 후배 같다”며 “같이 술도 마시고 고민도 털어놓고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CBS의 한 기자는 “법조가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배울 것도 많고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꼭 거쳐야 할 곳”이라며 “힘들어하는 기자들도 있겠지만 상당수 기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검 기자실은 연중무휴,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새벽별 보고 나와 새벽별 보고 퇴근하는 그들이 쏟아내는 기사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