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패기왕성했던 기자들, 이제는 칠순 바라봐
언론사 간부·구청장 등 지내, 연락 끊긴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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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원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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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중순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연행될 당시 기자들은 30대 중·후반이었다. 최준명, 유정현, 정운성은 1968년 입사 동기였고, 사진부 민경원은 그들보다 후배였다. 기자로서 한창 물이 올랐던 시기, 네 사람은 조선일보가 준비한 기획에 참여했다. 그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등을 돌며 농촌의 실태를 파헤쳐 보도했다.
그러나 그 보도는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고, 급기야 그들은 남산으로 끌려가 최대 3박4일간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30년, 이제 그들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난만큼 기억이 가물거렸지만 당시 기사가 난 신문을 보여주자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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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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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대표 집필했던 최준명은 최근까지 고려대 언론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 그는 조선일보에서 경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등을 거쳐 한국경제신문 사장을 지냈다. 백기범 신홍범 기자의 복직을 주장하며 신문제작을 거부하다가 1975년 조선일보에서 파면되기도 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권근술과 출판사를 함께하기도 했던 그는 1978년 조선일보에 복귀했다.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서 “최준명은 몇 달 동안 안 들어왔다가 나중에 복귀했다. 절개가 질겼다. 내가 그의 동생을 불러서 ‘당신이 책임지고 형님 데려오라’고 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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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명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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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현은 조선일보에서 정치부 차장, 월간조선 편집장, 사회부장, 부국장 등을 지냈다. 1995년 퇴직 이후 동아건설 부사장을 거쳐 프로축구 대전시티즌 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월간조선 편집장 시절, ‘정승화 증언’ ‘권인숙 고문사건’ 등 전두환 정권 시대의 비리나 비화 등을 잇달아 실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월간조선이 우파 대변지가 됐다고 비판했다. 좌든, 우든 평형감각을 갖고 보도해야 하는데 지금은 우파 쪽 기사만 싣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운성은 조선일보에서 사회부 차장 등을 지냈으며 스포츠조선으로 옮겨 제작국장 등을 지냈다. 그는 당시 사건과 관련,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기자가 기사를 못 썼으면 그걸로 끝이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했다. 당시 사진부 기자였던 민경원은 1992년 사진부 차장을 끝으로 조선일보를 떠났다. 언론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한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옛 동료들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인천 주재기자였던 신원철 등 주재기자 7명도 중정 각 지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신원철은 1980년 해직언론인으로 민선 1·2기 인천연수구청장을 지냈다. 그는 “그때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후배들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