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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현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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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변호사(우리로종합법률사무소)는 잠시 여섯 해 전의 기억 속에 젖었다. 한 중앙 신문사의 기자로서 입사 8년차, 한창 물이 오를 때였다. 그러나 정든 일터를 떠나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몇 번이고 망설여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 메아리쳤던 질문은 간단했다. “나는 왜 기자가 됐는가”였다. “언젠가부터 매너리즘에 빠진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 상황도 있었습니다. 결국 기자가 아닌 다른 역할로 기자로서 ‘초심’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의 질문에 주저없이 “신문 기자”라고 답했던 소년 김준현이었다. 꿈은 대학시절 더욱 굳어졌다. 88학번인 그는 흔히 말하는 ‘민주화 세대’였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언론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한창이었다. “기자는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난 그에게 벅찬 설렘이 되어 돌아왔다.
1995년, 소망하던 신문사 기자로서 첫걸음을 내딛은 그에게 열정의 시대가 시작됐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린 지 8년. 무거운 정체감이 가위처럼 억눌러왔다. 과연 나는 기자로서 초심을 지키고 있는가. 끊임없는 물음과 대답이 시계추처럼 오갔다. 재충전이 절실했다. 그러나 IMF 이후 열악해진 환경의 신문 기자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과 주저함이 주가의 그래프처럼 요동치던 어느 날, 아내가 민법 책을 선물했다. “읽어보고 이해가 되면 한번 해 봐요.” 아내는 고민하는 남편에게 사법고시에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삶의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뼈저리게 느꼈을 때, 그는 입술을 지그시 물고 사표를 던졌다.
“신문사 동료들은 많이 말렸습니다. 심지어 고시생 친구들도 ‘왜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오느냐’며 걱정했죠. 고시라는 게 꼭 된다는 보장도 없고 나이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왠지 큰 걱정은 들지 않더라고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있었고요.”
그리 넉넉지 않은 퇴직금이었지만 셋으로 나눠 부모님과 처가, 가족에게 바쳤다. “새 출발을 하겠습니다. 응원해주십시오”라고 설득했다. 4년을 ‘데드라인’으로 잡았다. 기자의 업보인가. 신문을 볼 때마다 좀이 쑤셨다. 기자 본능이 불끈불끈 솟아날 때마다 책으로 달래던 나날 끝에 그는 두 번 만에 1차 시험에 합격했다. 2차 시험에서 한차례 고배를 마신 뒤 기다리던 최종 합격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고뇌의 선택 뒤 세해 만이었다.
지난해에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기자 시절 주 전공을 살려 금융·경제 전문 변호사가 되는 게 그의 목표다. 그러나 더 소중한 바람은 약자에게 힘이 되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다. 그 작은 실천으로 지난해 ‘촛불 시민 지킴이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돈 잘 벌고 승소 잘하는 변호사도 중요하죠. 하지만 약자들의 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것은 기자를 꿈꿨던 제 초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