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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다른 현실…기자도 제2인생 준비해야

행복을 찾는 기자들 (끝) 인생 이모작

민왕기 기자  2009.03.04 14: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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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인생은 50세부터’라는 말은 이제 예사가 됐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인생 이모작’을 들고 나온 지도 오래. 그만큼 은퇴 후에도 팔팔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기자들도 생각이 많아졌다. 40대 중·후반이 되면 기자로 남을지, 다른 길을 찾을지 남몰래 속을 앓는 기자들이 많다. 특히나 최근엔 급변하는 미디어환경 탓에 얼마나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평생 기자로 사는 것이 천생 기자들의 영원한 꿈이지만, 한편으론 제2의 인생을 꿈꾸고 모색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고심 끝에 제2의 인생을 꾸린 기자들도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제 기자들도 제2의 인생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미래 위한 기획·준비 지금부터 시작하라”

서재철(63·전 제민일보 기자) 제주도 자연사랑미술관장은 현직기자 시절부터 꾸준히 미래를 기획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1997년, 50대 초반에 26년간의 기자생활을 정리하고 새 삶에 뛰어들었다. 끝까지 기자로 남고 싶었지만, 사진으로 시작한 인생을 사진으로 정리하겠다는 꿈을 택했다.

고민 끝에 퇴직을 결심했고 현역 시절, 틈틈이 찍은 제주도 풍경사진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사진 라이브러리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발전시켜 2003년엔 폐교를 리모델링해 자신의 사진이 가득 들어찬 미술관을 만들었다. 노력 끝에 제주도의 유명한 관광명소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서 관장의 이런 성공 뒤에는 ‘치밀한 기획과 준비’가 있었다. 실제 그는 현직기자 시절부터 제주도의 오름, 해녀, 식물, 동물, 한라산의 사계, 새, 곤충 등을 찍으며 미래의 큰 밑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가 보유한 사진만 무려 20만여 컷. 제주도와 관련해 펴낸 책만 15권에 달한다. 그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사진가가 됐고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저는 이제 정년이 없습니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거잖아요.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기보다는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내가 한 작업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 후배들도 고민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사진이든, 뭐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두고 차곡차곡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전문성 쌓아놓으면 미래 선택 폭 넓어져”

박원갑(45)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전문성’으로 미래를 개척하라고 조언했다. 2006년까지 세계·문화일보 등에서 부동산 담당기자로 일하다, 전공을 살려 연구직으로 업종을 바꿨다. 주위의 만류가 많았지만 40대 초반에 결단을 내렸다. “사회적 지위가 갑자기 사라져 힘들 수 있다. 연착륙이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우려의 말들이었다. 하지만 좀 더 자유롭게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직장에서 그는 주위의 우려가 무색하게 연착륙할 수 있었다. 이유는 ‘전문성’이었다.

박 소장은 2002년, 서른여덟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다녔다. 2005년엔 강원대 부동산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결국 올해 8월 학위를 받게 됐다. 그는 대학 때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기자시절 취재 일을 통해 부동산으로 전문분야를 바꿨다.

그는 “전문성을 쌓아놓으면 미래에 새로운 삶을 준비할 때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며 “어떤 식이든 준비를 해둬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또 “40대 중후반 기자의 99%가 심각하게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동료들과 후배들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웬만한 노력으로는 힘들죠. 하지만 기자들에겐 공부하는 길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전문분야 자격증이나 학위를 따라고 충고합니다.”

“경험이 우선, 시작은 무조건 작게”
사업가로 성공한 신향식(45·전 스포츠조선 기자) 신우성기자국어논술학원장은 퇴직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기자들에게 “처음에는 무조건 시장을 경험하며 작게 시작하라”는 구체적인 조언을 내놨다.

퇴직 후 많은 기자들이 체면 때문에 큰 사업을 벌이다 낭패를 보는 일이 주변에서도 잦았기 때문이다.
신 원장은 2002년 굿데이에서 비판성 기자칼럼 삭제와 불합리한 신문사 운영 누적에 항의해 퇴직한 후 논술학원을 열어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처음부터 큰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논술강사로 시작해 2004년에야 비로소 6평짜리 논술방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다. 시장을 모르고 덤볐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현재 그는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다. 바로 평생교육원이다. 성인들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센터를 만드는 게 그의 꿈.

신 원장은 “처음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기사 밖에 쓸 줄 아는 것이 없어 막막하고 답답했다”면서 “하지만 기자 경험과의 연관성을 살려 전략적으로 임했던 것이 성공의 주요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기자들에게도 40대 후반은 인생의 작전타임”이라며 “새로운 전략 짜기로 인생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결단과 실천 필요하지만 성급해서는 안돼”
정철진 소설가는 서른여덟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새로운 삶으로 뛰어든 경우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30대에는 기자, 40대에는 독립하겠다’는 평소 소신에 따른 결단이었다.

그는 지난해 8월까지 매일경제 기자로 일하다가 퇴직 후 소설 ‘작전’을 펴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미루고 미뤘어요. 원래는 더 빨리 결정하려고 했는데 결단을 내리지 못해 흐지부지됐었죠. 좋은 기회가 온 참에 새로운 삶을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지금 ‘이야기 공장’이라는 주제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종의 아이디어 사업이다.

하지만 그런 그는 기자들에게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보니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결단이 서면 실천에 옮겨야겠지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