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 한국일보 기자들의 80시간 철야농성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람은 모두 4명.
당시 사장이던 장강재는 한국일보 창업주 장기영의 장남으로, 1973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장기영의 뒤를 이어 한국일보를 맡았다. 1993년 8월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편집국장 김경환은 1976년 3월 한국일보를 떠나 신문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으며 1988년 작고했다.
종합편집부장 이상우는 한때 스포츠 신문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스포츠서울을 만들었고 일간스포츠를 재탄생시켰으며 스포츠투데이, 굿데이 창간까지 이뤄냈다. 그는 2004년 굿데이가 부도난 뒤 언론계를 떠났으며 지금은 추리소설과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
당시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동남아 9개국의 순회특파원 파견 중 문제의 기사를 썼던 홍순일은 코리아타임스 논설위원, 논설주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상무이사 등을 거쳐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