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이학준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 기자 |
|
| |
2007년 8월 21일 새벽.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인 윈난성(雲南山). 하늘에는 별이 촘촘히 박혔다. 환한 별빛은 무성한 열대림에 갇혔다. 가파른 산길에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탈북자 8명과 취재진 2명은 중국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1만㎞를 달려왔다. 동 트기 전까지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이 산만 넘으면 이제 자유다.
총을 든 군인들이 저 멀리 보였다. 가이드의 손짓에 따라 물길을 거스르고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지만 어느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정상을 앞두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안경 위로 빗방울이 내리쳤다. 나무를 찾아 몸을 감추고 숨을 고르는 사이. 르포 기사의 리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투철한 기자정신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엉뚱한 고민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만큼 밀입국의 순간은 몸서리칠 정도로 두려웠다.
당초 8시간이면 끝난다던 산행은 18시간을 넘겼다. 목이 마르면 메콩강의 흙탕물을 마셨다. 배가 고프면 이름 모를 나뭇잎을 따서 씹었다. 그런 우릴 바라보며 가이드는 혀를 찼다. “아무 거나 먹으면 죽을 수 있어.” 하지만 본능은 이성보다 강했다. 그렇게 밀입국에 성공했다. 라오스 국경에 도착하자 일행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자유의 땅에 가면 두 번 다시 국경을 넘지 말자고 약속도 했다.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취재팀은 그 밀입국 길을 다섯 번이나 더 건너야 했다.
2007년 4월에 시작된 취재는 2008년 2월에 끝났다. 중국, 러시아, 라오스, 태국 등 9개 국가를 옮겨 다니며 취재했다. 우리가 돌아다닌 거리를 계산하니 2만㎞가 넘는다. 그동안 중국인 브로커를 따라 두만강 인근에서 인신매매 현장에 참여했다. 마약을 입에 물고 국경을 건너온 북한 군인과 마주친 적도 있다. 그에게 받은 마약 덩어리를 손에 쥐고 중국 국경수비대 정문을 뛰어서 지나치기도 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벌목소에 잠입했다가 들켜서 도망친 경험도 있다.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제 죽는구나’ 하고 마음을 정리한 것만 세 차례다.
특히나 현장에서 붙잡혀 중국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밀 때 그랬다. 트럭을 타고 그들의 본부로 가는 길. 유서를 써놓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서울의 편집국으로 돌아가 자판을 두드릴 기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에 마음이 울컥하곤 했다. 탈북자 인권을 짚은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그렇게 완성됐다. 하늘이 도운 덕에 무사히 돌아와 기사를 썼고 다큐멘터리를 편집했고 온라인 특집 페이지를 기획했다. 게다가 제40회 한국기자상도 수상하게 됐다. 참으로 기적이다. 덧붙여 감사한 일이다.
수습기자 딱지를 뗀 게 벌써 10년이다. 1999년 봄,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마주친 선배는 원고지에 빨간 줄을 그으며 말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네겐 맞지 않는 것 같다. 다른 길을 찾아보렴.” 그만큼 재능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고 영상 편집을 했다. 어리석은 후배를 길러준 조선일보와 국민일보의 여러 선배들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