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김지영 전 기자(현 언론중재위 위원·신문윤리위 위원)는 1985년 여름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 경향신문이 특종 보도한 ‘‘학원안정법제정’추진’기사와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민주화 열기가 다시 불붙기 시작한 1985년 7월. 정치부와 사회부 기자들 사이에선 신군부가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모종의 대책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도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다.
“1985년 ‘2.12총선’을 계기로 신당 돌풍과 함께 학생운동 등이 재개되면서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안정법’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겁니다.”
당시 중앙청을 출입했던 그는 7월25일 오전에 출고한 ‘노총리·노대표 대책 협의’라는 기사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출근해서 노신영 총리의 동정을 체크했는데 그날따라 취재가 안 되고 분위기도 심상치 않더라고요. 끝내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의 모임인 ‘6인 회의’가 2학기 학원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청와대 근처 안가에서 첫 회동을 갖는다는 얘기를 듣고 기사를 썼는데, 그게 마침 사회부 김현섭 기자가 쓴 ‘‘학원안정법’제정 추진’이라는 기사와 함께 1면으로 들어갔지요.”
이 때문에 손광식 편집국장과 홍성만 정치부장, 강신구 사회부장 등과 함께 안기부 남산 취조실로 끌려갔다.
“처음에는 발과 주먹으로 때리다가 나중에는 각목까지 동원해서 때리더군요. 자술서를 강요받고 뭇매를 때리길 1박2일 동안 하더니, 결국 풀어줬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취조 상황이 시간대별로 청와대에 보고될 정도로 5공화국 입장에선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당시 학원안정법에 대해선 정부·여당 주요 핵심멤버 중 소수만 알 정도로 은밀하게 추진됐다. 무엇보다 정부여당 내에서도 찬반 격론이 심할 정도로 위헌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군부 내에 알력 다툼과 맞물려, 안기부 입장에선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취조를 받고 안기부 문을 나서는 순간, 이민을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정부가 국민들을 불법으로 데려 가서 고문하고 탄압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 나라에서 무슨 보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회의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언론계 민주화 운동에 투신, 3대 경향신문 노조위원장,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부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정권이 얼마나 갈지 몰랐지만 동서고금의 진리는 통하더군요. 보편적인 역사의 진리를 취재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