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기자 47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09년을 맞는 기자들의 바람, 각오 등을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2009년 새해에 바라는 것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다시 구조조정이 거론되는데 △기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언제 △미래에 대비해 준비 중인 일이 있는지 △꼭 사라졌으면 하는 언론계 문화 등 총 5개 항목을 물었다. 기자들은 대부분 정성껏 설문에 응했다. 각 항목별로 기자들의 답변을 정리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기자들이 있어 익명으로 처리한 응답도 있다.
2009년 새해 바라는 것은? 어려울수록 건강이 최고…가족 행복·경제 안정 원해
새해 바람은 인터뷰한 기자들 수만큼 다양했다. 개인적인 소망에서부터 경제위기 극복을 바라는 의견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건강이었다. 기자들은 어려울수록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또 가족의 행복, 동료간 화합도 화두였다. 최근 어려워진 나라 사정을 감안한 경제·사회적 안정도 중요한 키워드였다.
기자들답게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올해 기자로서 마음가짐을 단단히 다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기사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약자를 배려하는 아이템, 힘을 감시하는 기사, 최대한 ‘진실’에 다가간 기사를 많이 쓰고 싶다.”(MBC 임명현 기자)
“고구려의 원류를 찾아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는 기획기사를 쓰고 싶다.”(경기일보 이종현 기자)
“‘힘들다’ ‘어렵다’는 우울한 기사보다는 서민들이 웃을 수 있는 밝고 희망찬 기사를 많이 쓸 수 있었으면 한다.”(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모든 기자들이 권력과 광고주, 회사 측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할 수 있기를….”(KBS 범기영 기자)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 개정 철회, YTN 해고자 문제 등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자들도 있었다. “방송법 등 미디어관련법을 막아 여론 독점을 막는 것이 기자로서 1차적 임무” “YTN 해고자 전원 복직과 공정방송 체제 확립” “정권으로부터 언론 자유를 되찾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 등이었다.
이밖에 생존이라고 말하거나 ‘재테크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 ‘공부를 하고 싶다’, ‘블로그를 운영하겠다’, ‘금연에 성공하겠다’ ‘책을 펴내고 싶다’ ‘주가가 껑충 뛰었으면 한다’ ‘언론계의 활발한 비판정신 부활’ 등 응답이 나왔다.
구조조정 다시 거론되는데... 경영합리화 명분 악용 우려, 일부 필요하다는 응답도
우리 사회 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행 중인 ‘구조조정’은 언론계라고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감원, 명예퇴직 등 낯익은 단어들이 언론계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자들은 구조조정 얘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대부분은 “구조조정은 최대한 자제하고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구조조정에 앞서 솔직하고도 충분한 토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이제는 너무 익숙하게 들린다.” “많은 선배들이 용퇴를 할 것 같다.” “불황기는 기자들을 두 배 이상 힘들게 한다.” “신문이 언제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구조조정 대상 여부와 관계없이 힘든 한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기자들은 구조조정이 경영합리화를 위한 명분으로 악용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때 아픈 경험을 겪었던 기자들에게 그 기억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지역일간지 21년차 기자는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이 손쉽게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다. 구조조정이 경영부실을 털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구조조정이 결국에 기자정신을 좀먹게 할 것이라고 인식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겨레 12년차 기자는 “걱정되는 것은 경제적 궁핍이 정신적 피로로, 의욕의 상실로 이어져 기자의 예리한 결을 무뎌지게 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해법으로 “동료들 간 연대의식을 키우자” “나눔의 지혜로 이겨내자”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자” “정공법인 ‘기자정신’으로 승부하자” “어렵더라도 ‘진실’과 ‘정의’를 향한 기자정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한편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선진언론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언론이 기업으로 존재하는 한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양적이든 질적이든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은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의 위기가 언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언론 산업의 활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단초로 삼자는 얘기였다. 중앙일간지 한 기자는 “언론사들은 지난 10년 동안 지나치게 신문에 경영을 집중했다. 뉴미디어 분야에서 저널리즘을 확산하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 결과다.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언론산업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매일매일이 역사의 현장…독자 격려에 ‘뿌듯’
누가 ‘왜 기자가 됐느냐’고 물어오면 곤혹스럽다. 연차가 쌓일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매일매일 마감에 쫓기다보면 뒤를 돌아볼 틈이 없다. 그렇게 기자 초년병 시절, 간직했던 꿈은 아득해져간다. 그러다 문득 ‘그래, 정말이지 기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독자로부터 격려를 받았을 때, 내 보도로 제도 등이 개선됐을 때, 내가 쓴 기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취재원과 알찬 인터뷰를 했을 때, 특종을 했을 때 등이다. 이번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기자들도 대체로 이 흐름에서 크게 비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기자들은 기사가 나간 뒤 독자와 시·청취자로부터 격려를 받을 때 기자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홀로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관련 기사를 보도한 뒤 고마움의 전화를 받았을 때 ‘기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청주방송 황현구 차장)
“취재원들로부터 ‘기사 내 줘서 문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을 때는 기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진다.”(뉴시스 류난영 기자)
기사에서 다룬 문제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거나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됐을 때, 기자로서 만족한다는 기자들도 많았다. 또 동료들과 힘을 합쳐 좋은 지면을 만들었을 때라고 얘기하는 기자도 있었다. “내가 뽑은 제목이 사회적으로 이슈를 만들거나 매일매일 나오는 신문을 볼 때마다 기자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갖는다.”(헤럴드경제 이정환 기자)
“기자가 아니었다면 중대 위기와 격렬한 논쟁을 겪어온 순간에 방향을 제시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한국일보 김희원 기자)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는 기자들도 있었다. 충주 MBC 박소혜 기자는 “기자가 아니면 마주치지 못했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보람이 있다”고 했고, 디지털타임스 김무종 차장은 “독자와의 교감·소통이 이뤄질 때 힘든 상황에서도 기자직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율 기자는 “연말 명함집을 정리하면서 한해 동안 만났던 취재원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며, 그 사람을 통해 깨달았던 세상의 이치를 생각할 때 참 고맙고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와 같은 역사적인 현장을 취재하면서 보람을 느꼈다는 기자들도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현장에서, 새로운 역사가 꿈틀대는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한겨레 박종찬 기자)
“6월9일 12시간이 넘도록 촛불집회를 생중계했다. 박수와 함성을 격려해주고 먹을 것과 커피 등을 챙겨주던 시민들을 잊을 수 없다.”(경향신문 엄호동 기자)
“촛불집회 현장에서 기사를 통해 표출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이데일리 박기용 기자) “‘지금 바로 여기가 역사다’라는 느낌을 받는 현장이 있다. 그 현장에서 내가 본 것, 느낀 것을 기사로 풀고, 그 기사가 방송을 탈 때 짜릿하다”(SBS 유성재 기자)
미래에 대비해 준비 중인 일은? 외국어 등 공부 1순위…“현업 충실이 곧 미래” 답변도
대부분 기자들은 ‘공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일단 공부로 위안을 삼자는 심리가 커보였다. 구체적으로 외국어 회화나 대학원 진학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대학 때 전공을 살려 공부를 해볼까 한다.” “금융 자격증을 따 전문성을 키워야겠다.” “주위에서 대학원을 다녀보라는 권고를 한다.” “진학이나 연수를 통해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경향신문 한 기자는 “미디어에 대한 흐름과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대학원에서 언론에 대한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준비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뚜렷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기자들도 더러 있었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직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막상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 답답하다.” “아직 구체적인 미래비전은 준비하지 못했다.”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다며 환경 탓만 하는 내 모습에 미래는 항상 불투명하다.”
미래 준비에 돌입한 기자들도 일부 있었다. 시사IN 고재열 기자는 “미래 기자상은 ‘전업형 기자’에서 ‘부업형 기자’로 바뀔 것이다. 블로그 등 1인 미디어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에 충실한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 동아일보 21년차 기자는 “현업에 충실한 것이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아닌가 싶다. 이것저것 돌아봐도 그길이 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 김용철 기자는 “기자로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해본 것이 없다. 달리 잘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 제자리에 서 있게 된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들은 미래보다는 현재 생활을 열심히 하겠다고 응답했다. CBS 3년차 여기자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나둘씩 기울여 가려 한다”고 했고, 문화일보 4년차 기자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능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건강이 미래라는 답변도 있었다. “잦은 야근과 숙직, 출장에 몸이 많이 지친 듯하다. 미래에 대비해 건강을 준비하겠다” “다이어트, 금연 등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겠다” 등이었다.
꼭 사라졌으면 하는 언론계 문화는? “폭탄주는 후진 문화” “특권의식·공짜 심리 경계해야”
기자들은 꼭 사라졌으면 하는 언론계 문화로 술 문화를 많이 꼽았다. 특히 폭탄주에 대한 거부감을 공통적으로 드러냈다.
“자신은 물론 남의 ‘전투력’까지 심하게 저해하는 ‘고강도’의 폭탄주 문화는 사라지는 속도를 더욱 빨리 했으면 한다.” (SBS 8년차 기자)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억지로 마셔야 하는 것은 정말 싫어한다. ‘주도’나 ‘규칙’이란 이름으로 술자리 참석자에게 똑같은 양의 술을 강요하는 습관은 후진적 문화일 뿐이다.” (이데일리 2년차 기자)
“젊은 기자들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처럼 선배들이 준다고 무조건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전일보 7년차 기자)
특권의식과 공짜 심리를 거론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CJB(청주방송) 16년차 기자는 “언론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권위적이거나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라고 했다. 전남매일 12년차 여기자는 “몇천원밖에 하지 않은 야구장 티켓이나 영화 티켓을 공짜로 받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언론인의 소명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출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요즘 기자들은 다소 비굴해진 것 같다. 가난하더라도 금권력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경향신문 14년차 기자)
“언론계를 정치권이나 권력 주변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어 문제다.” (YTN 15년차 기자)
수습기자 교육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 응답자도 있었다. “현재 수습 교육은 개인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오래된 관행이고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수습교육을 군대 내무반 식으로 하는 것이 디지털화한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