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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 꽃 피우려 8백여명이 모였다

언론노조, YTN 노조 위한 '후원의 밤' 행사 개최

곽선미 기자  2008.12.19 11: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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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일 오후 7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YTN 해직기자를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 초청된 해직 기자들이 무대에 앉아 있다.  
 
“우리들 중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깃발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서히 깃발이 되어간다. 갈라진 조국과 사상을 하나의 깃대로 세우러 우리는 바람을 흔드는 깃발이 되어간다.”

YTN 6명의 해고 기자들은 ‘한 장의 헝겊’이고 싶었다. 그저 부끄럽지 않은 아들과 남편,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들은 ‘원칙’과 ‘상식’을 말과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칼끝은 냉정하게도 그들의 목을 겨누었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깃발’이 됐다.


이들에게 한 가닥 눈물이라도 위로가 될까.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동료 언론인들이 팔을 걷었다. 17일 오후 7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언론노조는 해직 기자 6명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열었다. 4백여명의 동료 언론인과 정치인, 시민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6명의 해직기자들은 초대 손님이자, 주인공이었다. 이날 만큼은 6명도 동료 언론인들도 ‘한바탕 웃음으로’ 지친 마음을 달랬다.

안도현 시인은 멀리 전주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2009년 속세와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그다. 이날 안씨는 해직 교사 당시 지은 ‘우리는 깃발이 되어간다’라는 시를 낭독했다. 그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시를 읽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토로했다.

“국가를 수익 모델로 보고 청와대가 취업 알선에 열심이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현실을 비틀었다. YTN 구본홍씨 등이 청와대의 취업 알선으로 언론사 사장에 내려앉았다는 의미였다.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나이를 먹어도 자신들이 한 일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김 총수는 YTN 노조를 평했다.




   
 
  ▲ 극단 '신명을 일구는 사람들'이 연극 굿을 벌이고 있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 중핵”


소설가 조정래씨와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이사, 백낙청 서울대 교수, 배우 정진영씨는 지지의 뜻을 담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조씨는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 갈수록 거칠어지는 시대의 파고를 넘자”고 했다. 박 이사는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중핵이다. 많은 언론인들의 투쟁과 열정이 정당한 보상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이 무대에 섰다. 상기된 얼굴로 그들은 자신들을 격려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얼굴을 더듬었다. 사회를 맡은 개그맨 노정렬씨는 이들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지, 가족들의 걱정은 없는지를 물었다.

조승호 기자는 일주일 간 회사를 떠나 있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누군가를 비난하며 인간성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고 여겼다. 조 기자는 ‘변절’이 아니라 그저 ‘떠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서도 나와 있었다. 많은 사람이 격려와 질책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주일 만에 그는 자신이 후배들을 놔두고 나온 ‘무책임한’ 선배라는 걸 깨달았다. “구본홍씨가 저를 돌아오게 한 1등공신입니다. 회사에서 ‘전향자’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더라고요.”

우장균 기자는 ‘못난 자신을 지탱하는 3명의 여인이 있다’고 했다. “한명은 9살 막내딸입니다. 딸은 ‘엄마에게 아빠가 해고되었는데 왜 아침 일찍 나가?’라고 묻습니다. 다른 한명은 45세 동갑내기 제 아내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철이 없이 잘려 왔는데도 묵묵히 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생 제 곁을 지켜준 75세의 어머니입니다. 늙은 노모는 매일 새벽, 저를 위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식탁에는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 한 잔과 고구마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도 전 이들의 든든한 응원을 받으며 힘을 내 출근 저지 투쟁에 참여합니다.” 우 기자는 가슴 뭉클한 사연을 풀어놓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 가수 임지훈씨가 '친구'를 열창하고 있다.  
 
임지훈·원미연 노 개런티 출연


가수 임지훈씨와 원미연씨는 노 개런티로 무대에 올랐다. 임지훈씨는 CBS의 파업 때 투쟁문화제에 섰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우연히 주유소에서 일하던 CBS PD 한 명과 마주친 일화를 들려주며 “그 친구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주 한 잔을 같이 기울인 기억이 난다”고 했다. 임씨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가수 김민기씨의 ‘친구’를 열창했다.

원미연씨는 행사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번 사태를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후원의 밤’이라고 해서 신나는 곡을 준비했다며 미안해했다. 청중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그는 다소 무겁게 가라앉았던 행사장을 열기로 가득 채웠다. 모든 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원씨는 ‘6명의 해직 기자들이 힘을 내시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극단 ‘신명을 일구는 사람들’은 기축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빈다며 한 판 굿을 벌였다. 무대 위로 사람들을 불러낸 뒤 큰 웃음을 터뜨리자고 제안했다. “하-하하하하하.” 웃음 속에 시름과 고통을 날려 보내자는 의미였다.



   
 
  ▲ 가수 원미연씨가 무대에 선 소감을 밝히며 해직기자들에게 힘을 내시라고 말하고 있다.  
 
“사익추구세력에 밀려선 안돼”


언론인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씨도 무대에 올라 언론인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그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우리 스스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연대와 지지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지난 한달 간 해직 기자를 지원할 후원인을 모집해왔다. 이날까지 모인 약정수는 모두 8백36명. 해직 기자 1명당 1백명의 약정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권철 사무처장은 “여러분의 지지와 도움으로 YTN 노조와 함께 힘을 잃지 않고 강고하게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장내에 머물러 있던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지지의 목소리를 냈다.

4백여명의 행사 참가자와 8백여명의 후원 약정, 노 개런티로 무대를 빛낸 사람들. 6명의 해직 기자들이 이날은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지 않았을까.

곽선미 기자 g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