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문을 나설 때, 회사를 나설 때, 또 집 앞도 아니고 회사 근처도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택시라도 잡고자 서 있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감은 엄습했고, 술기운을 빌려 잠이 들었다.”
1988년 8월6일의 악몽은 오홍근(64)에게 낯선 두려움의 서막에 불과했다. 육신의 아픔은 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테러가 주는 공포는 그의 영혼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특히 마지막 보루라 여겼던 회사가 그를 버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회사에 복귀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위로휴가를 가 있는 동안 회사 최고 경영진이 군 장성들을 차례로 만나 ‘죄송합니다. 저희가 가해자입니다’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는 것.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사과까지 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피해자 쪽에서 사과하고 다닌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괴로웠거든요. 중앙일보 사옥 옥상에 몇 차례 올라갔습니다. 항변의 뜻으로 뛰어내릴 생각이었어요. 두 아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당시 삼성은 방위산업 수주 건을 군부와 논의하고 있었고, 오홍근 사건으로 수주에 영향을 미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신문사 경영진이 군 실력자들에게 폭탄주를 돌리며 오홍근 때문에 빚어진 오해를 풀도록 로비를 벌인 것이다. 삼성 쪽 일부 간부들은 공공연히 ‘오홍근 때문에 일이 안된다’며 비난하고 다녔다.
그는 그동안 언론이 바로서려면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문사 경영진의 몰상식한 행동은 그에게 언론은 정치권력만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7월 “88년 국방부 정보사령부에 의해 저질러진 오홍근 테러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과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그에게 테러를 가했던 당사자들도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가 없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언론자유고, 그게 보장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때일수록 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길게 봐야 한다.”
그는 1999년 3월 중앙일보에 사표를 내면서 31년 기자생활을 끝냈다.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국정홍보처장, 청와대 공보수석,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을 지낸 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 강의를 하며 인터넷 블로그(http://blog.ohmynews.com/dhghdrms01/)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