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이후 한겨레 지면에는 1년 이상 삼성그룹 광고가 자취를 감추었다. 삼성 로고가 박힌 광고는 지난 2월26일자 1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축하 광고가 유일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경향신문 지면에는 삼성 서울병원(1월12일자), 삼성중공업 태안기름유출 대국민 사과 광고(1월22일자) 등 2건이 게재됐다.
다른 신문 지면에 계속 실리는 삼성 광고가 한겨레와 경향에 안 실리는 것은 ‘비판언론 길들이기’가 아니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서배원 경향신문 전략기획실장은 “전 언론매체에 안 주는 것이 아닌 특정 언론에만 광고를 안 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신문은 삼성과 여러 채널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도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대 광고주인 삼성이 광고를 중단하면서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돼 왔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경우 한해 삼성 광고액은 50억원에서 많게는 8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은 50억원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광고가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신문구조를 감안할 경우, 삼성 광고 의존도는 모든 신문을 막론하고 절대적이다. 한겨레 고광헌 사장이 삼성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면서 ‘고통’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최근 유례없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 삼성 광고 없이 가겠다는 선언은 무모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우려를 모르지 않는 고 사장이 관계 단절을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를 재개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일각에서는 ‘한겨레에 할 만큼 했는데 비자금 정국에서 한겨레가 해준 것이 무엇이냐’는 푸념이 나온다는 것은 언론계의 정설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한겨레에 대한 감정을 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겨레는 삼성 최고위층이 지난 5일 자사 광고국장을 통해 “다음에 상황을 보자”며 광고 재개 불가 입장을 최종 통보하던 당일 저녁 임원회의를 열어 삼성과의 결별을 결정했다. 이 같은 초 스피드 결정으로 미뤄 삼성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내부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 사장의 관계 단절 선언은 삼성에 대한 최후통첩 성격이 짙다. 한겨레는 출입기자 이외에 어느 누구도 일체 삼성그룹과 접촉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는 등 삼성과의 한판 싸움을 벼르고 있다. 고 사장이 ‘사우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삐뚫어진 가치관과의 싸움”이라고 정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한겨레의 이번 선언이 삼성의 광고 재개를 갈망하는 다른 어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겨레 광고국 관계자는 “우리가 앞장서 광고를 주라고 요청하지는 않겠지만 준다면 받을 것”이라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김성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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