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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 독재 맞서 자유언론 선언

1975년 3월 기자·PD·아나운서 등 언론인 1백34명 강제해직

민왕기 기자  2008.11.05 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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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기자들의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보도한 1974년 10월25일자 기자협회보 1면.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과 한국일보 김경환 편집국장이 중정에 연행됐다는 소식도 담겨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1974년 동아일보 자유언론 실천선언문 중에서)

동아 사태는 1975년 3월17일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자유언론운동을 벌이던 1백34명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이 강제 해직된 사건을 말한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일보 사측은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에 협력해 기자를 해고시켰다. 동아투위가 이 사태를 유신정권과 동아일보 모두의 과오라고 주장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다.

동아사태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군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이때부터 동아일보 사내에서는 언론자유수호 운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1년 후인 1972년 유신체제 선포에 따라 언론 통제가 이어지자 기자들의 격렬한 항의가 지속됐고 결국 비판적인 기자들은 연행, 온갖 모욕과 고문을 당했다. 이에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정당한 기사보도 요구, 연행된 기자 석방 요구, 철야 농성을 이어갔다. 언론인 스스로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사측과의 마찰도 고조되어 갔다.

결국 1974년 언론 최초의 노동조합이 결성됐으며 같은 해 10월24일 ‘자유언론 실천선언’이 나온다.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될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대 법대교수가 중정의 고문으로 피살되고 수많은 종교인, 지식인, 대학생들이 대량 구속되어 사형, 무기, 15~20년 징역형을 무더기로 받는 등 유신독재 정권의 테러, 공포 분위기 속에서 나온 역사적 문건이었다.

이후 유신정권은 1974년 12월16일부터 동아에 대한 초유의 광고탄압을 시작했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바로 이것이다. 광고탄압은 계속됐고 사측은 결국 1975년 3월8일 기획부, 출판부 등 4개부서 18명의 사원을 해고했다. 이 중에는 자유언론운동의 핵심이었던 조학래 기자가 포함돼 있었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이에 제작 거부에 들어갔으나 1975년 3월17일 술취한 깡패들이 농성 중인 기자 등 150여명의 사원을 거리로 내몰았다. 결국 1975년 7월16일 광고는 정상화됐지만 기자 등 1백34명은 해임조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