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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걸 전 한겨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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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에 터진 서경원 평민당 의원 방북 사건은 르포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윤재걸(62)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당시 한겨레신문 민권사회부 편집위원보였던 그는 서 의원으로부터 방북 사실을 듣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불고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무려 아홉 차례나 발부됐다.
그 사건에 연루된 유일한 언론인이었던 그는 그 사건이 종료된 이후 언론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의 필력을 잘 알고 있는 상당수 선후배 기자들은 그가 기자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무엇보다도 서경원의 방북 사실을 확인하고도 기사를 쓰지 않은데 대한 여러 오해와 억측이 있었다.
안기부와 검찰은 “평민당 김총재로부터 거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냐, 서의원으로부터 허담이 준 5만 달러 중 2만 달러를 받은 것이 아니냐”면서 취재를 미끼로 취재원으로부터 금품을 뜯는 파렴치범 내지는 사이비 기자로 내몰았다. ‘취재원 보호’ 차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한겨레를 무력화하고 그를 사법처리하고자하는 의도였다.
그는 그해 3월27일 서 의원과 인터뷰 직후 6꼭지의 기사를 썼다. 하지만 그 기사들은 서 의원이 구속된 6월27일까지도 한겨레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안기부가 그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던 다음날인 7월4일자 5면에 ‘서의원 방북관련 단독회견 내용’이라는 박스 기사로 6꼭지 중 1꼭지가 실렸을 뿐이다.
왜 보도가 되지 않았던 것일까. 취재원이던 서 의원이 기사를 보류해달라는 요청이 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한겨레가 스스로 보도를 막았다. 그가 서 의원을 인터뷰했던 3월27일 저녁 한겨레에서는 비상이사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당시 편집위원장이던 장윤환 언론중재위원은 1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서경원 방북을 폭로하면 김대중 총재를 비롯한 평민당은 치명상을 입게 돼 있었다. 유일한 야당으로 한겨레에 우호적인 세력이었던 평민당에 타격을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경원에게 당에 먼저 보고한 뒤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기사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경원이 미적미적하면서 당에 보고하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안기부가 덮치면서 사건이 표면화됐고 결국 기사는 묻혔다”고 말했다.
윤 전 기자는 “그때 그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우습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90년 1월3일부로 한겨레신문을 그만뒀다. 이후 한동안 정치권에 몸담았던 그는 1995년 광남일보 논설주간으로 언론계에 돌아온 뒤 지금은 한국정치인물연구소 대표를 맡으며 3김 평론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상황의 산물인 민주화 과정에서 지식인은 맞닥뜨린 상황을 뚫고 나가야 했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펜이 당시 나에겐 상황의 산물이었다. 도마뱀 꼬리 자르듯 서경원을 희생시키는 선에서 끝났지만 통일의 열정으로 방북한 취재원의 진실을 위해서는 보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