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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역대 기자해고 사태 비교

장우성 기자  2008.10.15 14: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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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기자 6명 해고 사태는 언론인 강제 해직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1980년 이후 방송사 해직 사태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 때문에 “시계가 1987년으로 되돌아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80년대에는 군사 독재정권에 의한 대규모 해직 시대였다.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2월 프레스카드제를 실시하면서 2천2백87명의 기자를 몰아냈다.

동아일보 사태는 1975년 3월 17일 새벽 경찰력을 동원해 제작거부와 철야농성을 벌이며 동아일보 광고사태와 관련, 해임된 직원의 복직을 요구하던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 PD, 아나운서 1백13명을 사측이 강제 해산시키고 해고한 사건이다.

조선일보에서는 같은 해 3월6일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기고문에 반론 글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 2명의 기자가 해직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던 34명의 기자 역시 해고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구성됐다.

5공화국 아래서 언론인 해직은 극에 달했다. 신군부는 1980년 말 언론 통폐합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2천여명의 언론인이 줄어들었다. 신군부에 항의해 제작 거부 등을 결행한 언론인을 상대로 보안사 언론인대책반이 선정한 해직대상자는 9백33명에 이르렀다.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는 1백명 이상 규모의 대량 해직은 사라졌다. 그러나 주로 방송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각 방송사별로 해직 사태는 이어졌다.

1990년 KBS에서는 ‘낙하산 인사’ 서기원 사장 퇴진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노조원 12명이 구속되고 2명이 수배됐으며 이 중 안동수 위원장 등 10명이 강제휴직 당했다. 이들은 3년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1990년 ‘PD수첩’ 불방과 관련, 사장실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MBC노조 김평일 사무국장이 해고됐다. MBC 최창봉 사장은 당시 PD수첩이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편에서 수입개방으로 도탄에 빠진 농촌 현실을 다루자 “남북총리회담에 참가하는 우리 측 대표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방송 보류를 지시했다. 이후 최 사장 불신임 운동을 주도하던 안성일 노조위원장도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 이들은 3년 뒤 재입사 형식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MBC 노조위원장을 지낼 당시 ‘강성구 사장 퇴진 투쟁’과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996년 해고됐다. 노조 비대위원 5명도 징계했다. 당시 MBC 보도국·보도제작국·스포츠국 기자 1백87명은 이에 항의, 6월14일 집단 사표를 내고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바로 다음날 강성구 사장은 연임된 지 3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으며 최문순 기자는 해직 10개월 뒤 복직됐다.

2000년에는 KBS노조 현상윤 위원장과 김수태 부위원장, 최은 정책실장이 사내 개혁 투쟁과 ‘방송법 개악 저지 파업’을 벌이다 해직됐다. 이들은 이듬해 일터로 돌아왔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고승우 대표는 “‘낙하산 사장 반대’가 기자 6명을 해고하는 등 33명 직원에 대해 징계를 내릴 만한 사안인가”라고 되물으며 “1987년 이전 상황을 방불케 하는 절망적 사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