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잇따라 추진되고 있는 인사, 프로그램 개편, 조직 개편 등이 ‘과거 회귀’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7일 단행된 95명의 평팀원 인사는 실시 그 자체로 보도본부에 큰 파장을 부르고 있다. ‘보복·표적인사’시비도 문제지만 대규모 인사를 지켜본 기자들의 자기검열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중견급 기자는 “인사 대상이 아니었던 기자들도 무언의 압력을 받는 게 사실”이라며 “취재 제작과정에서 자기검열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물갈이’ 수준의 대폭 교체를 겪은 탐사보도팀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중견급 기자는 “탐사보도는 인력의 축적된 경험과 훈련이 중요한데 핵심적 인력 6명을 교체한 것은 우선 물리적 약화부터 부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 쟁점은 이병순 사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온 프로그램의 존폐’ 문제다. KBS는 19일 국회 결산 감사에서 ‘시사투나잇’의 폐지와 ‘미디어포커스’의 개편이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는 정 전 사장 시절 생긴 대표적 개혁 성향 프로그램이어서 존폐에 따라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애초 존폐 대상은 아니라고 예상되던 시사기획 ‘쌈’도 위태롭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쌈 제작진은 23일 입장을 내고 “회사측이 최근 ‘시사기획 쌈’의 타이틀과 포맷을 바꾸라는 등 사실상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정당성이 결여된 일방적 개편 요구가 계속된다면 제작진은 ‘쌈’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거듭 천명한다”고 밝혔다.
조직 개편 역시 뇌관이다. 요체는 정연주 전 사장 시절 도입된 팀제 개혁이다.
조직 개편안은 이르면 11월초, 늦어도 연내에는 확정될 전망이다. 김성묵 부사장은 12일자 KBS 사보를 통해 “적자경영 해소와 함께 조직 개편은 KBS 발전을 위해서 중요한 문제”라며 “‘대국 소팀제에 본부별 기능을 고려해 생산성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대국 소팀제’가 될 경우 보도본부는 보도국장제의 부활이 유력시된다. 정 전 사장 시절 팀제가 실시되면서 보도국장제는 폐지되고 보도총괄팀장이 축소된 역할을 맡았다. 총괄팀장은 대외적으로 보도본부를 대표하고 전체 업무를 말 그대로 ‘총괄’하는 일을 했다. 팀장에 대한 인사권도 없었다. 취재 제작에 있어서도 관여할 여지가 적었다. 그러나 국장제가 부활되면 인사권은 물론 취재 제작에 대한 관리 기능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취재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도 예상된다. 보도본부는 23일까지 각 팀별로 개편에 대한 의견 수렴을 마치고 본부의 안을 결정해 보고할 예정이다.
한 고참급 기자는 “팀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지금 진행되는 것은 ‘공’보다는 ‘과’를 부각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직개편은 노조와 단체협약을 거쳐 결정해야 되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11월 말 노조 선거를 마친 뒤 새 집행부가 들어선 뒤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로의 회귀 우려는 사내 보도정보게시판 실명화 논란 등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KBS 사내 네트워크인 코비스 상의 보도정보게시판은 KBS기자협회장이 게시판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익명으로 게시물 게재가 가능하다. 보도본부는 팀장 회의에서 표결에 부쳐 2명만 반대한 가운데 압도적 지지로 게시판 실명화와 보도총괄팀으로 관리권을 옮기는 안을 통과시켰다가 기자협회 쪽의 반발로 유보된 상태다.
기자협회장의 팀장 회의 참관도 불허하는 안이 거론됐다가 일단 백지화됐다. 기협 회장의 전임제 폐지, 기협 사무실 폐쇄 등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장급 기자는 “합리적인 논의 과정과 관행이 생략된 채 추진되는 최근의 움직임은 ‘과거 회귀’라는 뚜렷한 방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자율성에 익숙해진 젊은 기자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