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에 맞춰 내뻗는 오른팔이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KBS 젊은 기자들의 무기는 ‘자유’였다. 촛불집회에 모였던 시민들처럼 그들의 외침은 ‘냉정과 열정’이 하나된 새로운 사건이었다.
KBS의 9년차 이하 1백70명의 기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병순 사장 불인정, 이사회 해체, 노조 비상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선 3일은 마침 제45회 방송의 날이었다. 정권의 방송 장악 논란 속에서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의 메아리가 됐다.
직종과 지역을 망라해 26기부터 올해 입사한 34기까지 KBS 기자는 모두 2백80명. 그 가운데 1백70명이 참여했다. 참가율은 60% 정도다. 그러나 새 사장 취임 뒤 급작스레 추진된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함께하지 않은 기자들도 큰 틀에는 동감하나 절차상의 문제나 사장 반대에 대한 현실적인 이유를 제기했다고 한다. 민감한 회사 내외 분위기에서 행동으로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왜 이 젊은 기자들은 마이크와 카메라 대신 ‘관제사장 물러가라’는 피켓을 들었을까.
“공영방송의 기자로서 부끄럽지 않고 싶었습니다. 8월 KBS에서 벌어진 일들, 한마디로 수치스러웠습니다. 기자로서 사회에 가감 없는 비판의 칼날을 가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일터에서 일어난 일에 침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당한 사장 해임과 임명 과정을 보고 KBS의 기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취재를 나가면 시민들이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KBS기자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자는 의견이 비슷한 또래 기자들끼리 자연스레 모였다.
더욱이 이번 성명은 입사 5년차 이하의 ‘가장 젊은 기자들’이 주축이 됐다. 이 기수 사이에서 참여율은 90%를 넘는다. 386세대 선배들처럼 사회운동과 투쟁이 낯익지 않은 이들이다. 이번 성명에 참여한 한 기자는 “이념과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젊은 기자들도 다양하다”며 “상식과 비상식, 합리와 비합리가 우리들의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임 사장의 취임사에서 우려되듯 “보도·제작 자율성과 비판적 기능 위축에 대한 최일선 기자들의 두려움”도 큰 몫을 차지했다.
젊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방송독립’ 지키기에 기폭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젊은 기자는 “우리들의 행동 뒤 이전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게 증명됐다고 본다. 분열이 아니라 우리의 고민을 어떻게 함께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 KBS가 안팎으로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프로그램 개편과 인사 등이 진행되면서 예상되는 여러 대립 국면에서 젊은 기자들이 할 일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다.
3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주축이 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그것이다. 동아투위 정동익 위원장은 “언론자유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내부 기자들이 쟁취해내는 것”이라며 “선배로서 KBS 젊은 기자들이 든든하다. 공영방송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국민들을 감동시켜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