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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박정만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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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문을 당했던 사람은 모두 7명. 그 가운데 박정만 시인은 20년 전 유명을 달리했고, 나머지 6명은 그때 당했던 분노의 기억들을 애써 떨치며 제각각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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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빈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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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수산(65)은 그 사건 이후 술과 방황으로 세월을 보내며 글을 쓰지 않았다. 자신을 고문했던 보안사령관 노태우씨가 1988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 있기도 했다. 현재 소설을 쓰며 세종대 국문과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보는 한씨와 다각도로 접촉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시 중앙일보 편집위원이던 정규웅(68)은 필화사건을 사전에 챙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후 복귀해 편집국 부국장, 중앙경제신문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 등을 거쳐 1999년 퇴직했다. 현재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문학평론과 관련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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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기상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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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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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성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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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국장 대리 겸 문화부장이던 손기상(72)은 여성중앙주간, 편집부국장 등을 끝으로 언론계에서 은퇴한 뒤 문화기관단체에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협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 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당시 출판부 기자였던 이근성(58)은 현재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상임고문이다. 연루자 가운데 유일하게 언론계를 떠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정치국제담당 부국장,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9년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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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웅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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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66)은 경기도가 설립한 공익법인인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당시 출판부장이던 권영빈은 ‘욕망의 거리’ 단행본을 중앙일보에서 내는 작업을 하다 연루됐다. 2005년부터 2년간 중앙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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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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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65)은 당시 해직상태였다. 그 사건 이후 조선일보로 옮겨 월간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문화부장, 출판부국장 등을 지냈다. 1992년 14대 대선 때 김영삼 대통령 후보 홍보책임자를 맡기도 했으며, 97년부터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했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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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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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만 시인은 필화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당시 출판사 고려원 편집장이었던 그는 책을 내기 위해 한수산과 몇 번 만났을 뿐이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1988년 숨졌다. 그는 살아생전 정규웅을 만날 때마다 “형님, 도대체 워찌된 일이다요. 답답해 죽겄소. 이유나 알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